2016 법무사 5월호
82 “가장숭고한순간은가장후미진 『사람아, 아프지 마라』 문화의 멋 • 시야가 트이는 책 읽기 진료실에 꽃피는 ‘가족 간의 사랑’ 선망의 직업 ‘의사’를 서민들의 친근한 이웃으로 가깝게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은 ‘시골의사 박경철’이 다. 시골의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한 사연들을 담 은 그의 책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전 국민의 마음을 훈 훈하게 어루만졌다. 박경철의 영향 때문인지 이후 의사들 의 진료실 에세이집들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러나 크게 주목을 받은 책들은 없었는데, 최근 눈에 띄는 책 한 권이 등장했으니 바로 의사 김정환의 산문집 『사람아, 아프지 마라』다. 저자 김정환은 ‘가정의학과’ 15년차 의사다. 가정의학과 는 감기몸살 같은 일상적 질병부터 평생을 비슷한 방법으 로 관리해야 하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가진 어르신들이 ‘주치의’처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명칭 속의 ‘가정’ 이라는 단어가 내과, 이비인후과, 치과, 정형외과 등과 달 리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산문집의 글들 역시 몹시 ‘가정적’이다. ‘아 프지 마라’는 제목과 달리 지나치게 슬프거나 비극적인 아 픔들보다는 진료실에서의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사랑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주로 가족 간의 사랑이다. 젊거나 늙은 부부, 손자와 할아버지, 부모와 자식 등이 아픈 가족을 두고 보이는 애잔한 사랑이 책 전반을 타고 흐른다. 그러다 가끔은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빵~ 터지는 개그’도 끼어 있다. 이 책의 첫 이야기 제목이 ‘사랑’인 것이 우연한 배치가 아닌 이유다. 참 꼬장꼬장한 노인네다 싶었다. 진료실 문을 열고 70대 노부부가 들어왔다. 한 달 전에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 약 물 투여를 시작한 할머니와 그 남편분이다. 할아버지는 몹 시 수줍음이 많은 것 같은 할머니를 대신해 유독 카랑카랑 한 목소리로 의사에게 꼬치꼬치 질문을 쏟아낸다. 그리고 “아, 약을 계속 먹으라 그거죠?”라는 식으로 의 사의 답변을 똑같은 목소리로 복창한다. 그게 좀 짜증이 난 의사는 환자인 할머니와 직접 대화를 시도한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의사에게 속삭이신다. “이 사람, 귀가 거의 안 들립니다. 집사람이 남들한테는 부끄럽다고 얘기 못 하게 해서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저자 김정환 행성B잎새 2016.02.05 15년차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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