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10월호

85 법무사 2016년 9월호 『남한산성』을 베껴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의 문체가 뛰어나다는 것의 방증이다. 탱크처럼 육중하게, 제비처럼 날렵하게, 장미 줄기의 숨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할머니의 엉덩이 모양 납작 퍼져 흐름을 멈춘 하류의 강물 처럼 호흡이 멎게, 자유자재로 펼쳐지는 김훈의 글은 ‘베 껴 쓰기’의 대상으로 안성맞춤이다. 그의 문장들을 꼼꼼히 읽다보면 글을 잘 쓰는 조건이 보인다. ‘관찰, 생각, 공부’ 다. 그의 『자전거 여행1, 2』도 예외가 아니다. 쓰고자 하는 대상들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말도 나누고, 이미 알고 있 는 지식을 덧붙이고, 미처 몰랐던 것들을 공부해서 한 줄 한 줄 문장들이 만들어졌다. 태백산의 험준한 고갯길, 바 닷가 갯벌, 부석사 무량수전, 산골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맹인에 대해 쓴 그의 글들이 다 그런 식이다. 숨 막히는 허송세월, 여행이 로망인 이유 김훈과 고창 선운사 해우소(화장실)에서 잠깐 일 좀 보 고 가자. “술을 억수로 마신 다음 날 아침에 누는 똥은 불우하다. 똥이 항문을 가득히 밀고 내려가지 못하고,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어나온다. 똥이 똥다운 활력을 잃고 기신거리 면서 툭툭 끊긴다. 이것은 똥도 아니다. 삶의 비애는 창자 속에 있었다. 이런 똥은 단말마적인 악취를 풍긴다. 똥의 그 풍요한 넉넉함이 없이, 이 덜 썩은 똥냄새는 비 수처럼 날카롭게 주인을 찌른다. 간밤의 그 미칠 듯한 슬 픔과 미움과 무질서와 악다구니 속에서, 그래도 배가 고파 서 집어먹은 두부김치며 낙지국수며 곱창구이가 똥의 원 만한 조화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반쯤 삭아서 가늘게 새어 나오고 있다. 이런 똥의 냄새는 통합성이 없다 … … 이것은 날똥이다. 날똥을 들여다보면 눈물이 난다. 이 눈물은 미칠 듯한 비애의 눈물이다. 날똥 새어나오는 아침 의 화장실에서 나는 때때로 처자식 몰래 울었다. 날똥이 여,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이여 청춘이여 조국이 여, 모든 것은 결국 날똥이 되어 가락국수처럼 비실비실 새 어나가는 것인가. 쉰 살 넘어서 누는 날똥은 눈물보다 서럽 다 … 이럴 수만, 이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대소변 을 누듯 망집의 욕망도 훌훌 우리 몸 밖으로 내던질 수 있 다면. 아, 인간이여. 헛된 욕심의 총화여, 슬픔이여.” 내친김에 광릉 수목원의 연못가에 앉아 수련이 피는 지 경도 함께 지켜보자. “수련은 물 위에 떠서 피지만, 한자어로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들 수(睡)를 골라서 수련(睡蓮)이라고 쓴다. 아마 도 햇살이 물 위에 퍼져서 수련의 꽃잎이 벌어지기 전인 아침나절에 지어진 이름인 듯싶지만, 꽃잎이 빛을 향해 활 짝 벌어지는 대낮에도 물과 빛 사이에서 피는 그 꽃의 중 심부는 늘 고요해서 수련의 잠과 수련의 깸은 구분되는 것이 아닌데, 이 혼곤한 이름을 지은 사람은 수련이 꽃잎 을 오므린 아침나절의 봉우리 속에 자신의 잠을 포갤 수 있었던 놀라운 몽상가였을 것이다 … … 수련은 빛의 세기와 각도에 정확히 반응한다. 그래서 수련을 들여다보는 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의 숨 막히는 허송세월이 필요하다.” 바로 저 ‘숨 막히는 허송세월’이야말로 여행이 우리 모두 의 로망인 치명적 이유가 아닐 수 없다. 김훈이 프로 사진 작가 이강빈과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돈 후 펴낸 『자전거 여행 1, 2』 권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기행문인데 얼마 전 ‘문학동네’에서 리모델링 판으로 새롭게 출판했다. 눈물보다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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