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3월호

80 한비자는 서문표의 일화를 들어 군주가 고립무원이 되었을 때, 어떤 정치적인 모순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서문표가 업( 鄴 ) 땅의 장관이었을 때 청렴결백하고 근면성실하여 털끝만치도 사리를 취하지 않았으나 군 주의 측근무리들을 대단히 소홀하게 대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힘을 합쳐 그를 미워하였다. 일 년 후 연말보 고 때 군주가 그 관인을 몰수하였다. 서문표가 자청하여 말하기를 “제가 이전에는 업 땅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그것을 터득하였습니다. 원컨대 다시 관인을 내려 주시면 한 번 더 업 땅을 다스리 고 싶습니다.” 서문표는 이렇게 말하면서 조건을 겁니다. 다시 나쁜 평판이 들려오면 자기 목숨을 거두어도 좋다고. 서문 표는 업 땅에 다시 부임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렴은커녕 백성들을 착취하고 거기서 거둔 재화로 궁중에 있는 실세들을 열심히 챙겨 줍니다. 그리고 1년 후 서문표가 궁에 들어가자 왕은 그를 칭찬합니다. 그러자 서문표는 기다렸다는 듯 왕에게 일갈하죠. “지난해에는 주군을 위해 다스렸는데 주군께서는 저의 관인을 빼앗으셨고, 이번에는 주군 주변의 무리들 을 위해 다스렸는데 주군께서는 허리를 굽히시네요.” 우리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많죠. 서인 황윤길이 일본에 다녀온 후 선조에게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보고하지만, 동인 김성일은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된다”며 전쟁 날 일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풍신수길의 인상을 묻는 선조의 질문에도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김성일은 눈이 쥐와 같아 두려워할 위인이 못 된다며 반대의 말을 합니다. 조선시 대 붕당정치의 추악한 면을 잘 보여 주는 장면이죠. 붕당을 치지 못하면, 공적 권위가 무너져 나라가 망할 것이다 붕당정치는 실력 있는 인사가 등용되지 못하게 하고 무능한 인사를 자리에 앉게 하여 인사행정 자체를 파 괴시킵니다. 단순히 파당에 속하고 파당의 수장에게 줄을 잘 서 중책을 맡게 되는, 그런 인사행정의 파괴문 제가 한비자의 「유도」 편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붕당정치의 폐해가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국가의 재화를 유용하고 법을 무시하며, 백성들에게 못 되게 굴고 공적 권위와 사회적 신뢰를 철저히 파괴하여 결국 나라를 휘청거리게 하겠지요. 그래서 한비자는 붕당은 반드시 쳐부숴야 한다고 했습니다. 법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하게 밟아 줘야 하고, 처벌은 반드시 무 겁게 해야 한다고요.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