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9월호
잘랐다. 산적은 그것이 남편과 결투를 하라는 의미로 받 아들이고 싸움을 청하지만 사무라이는 이런 여자를 위 해 목숨을 걸지 않겠다며 거절한다. 산적에게 여자를 데 려가라고 한다. 그러자 산적은 자기를 따라오려는 여자 를 뿌리치고 가려 한다. 여자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대 며 둘은 남자도 아니라며 비난한다. 산적과 사무라이는 여자의 비난과 부추김에 싸움을 시작하지만 서로 부들부 들 떨며 칼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이전투구 끝에 산적 은 두려움에 떨면서 사무라이의 가슴에 장도를 꽂는다. 여자는 도망치고 기진맥진 탈진한 산적은 여자를 쫓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한참 후 기력을 회복한 산적은 사무라이 가슴에 꽂힌 칼을 뽑아 들고 도망친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까지 솔직하지 못 한존재” 이상 네 사람의 진술은 제각기 다릅니다. 일정 부분은 사실이지만 나머지는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여 덧붙이고 윤색한 것입니다. 그중 나무꾼의 증언이 사건을 직접 목 격한 것이니만큼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완전히 진실이라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애 초에 나무꾼은 관아의 심문에 거짓증언을 하였고, 농부 가 그 여자의 단도는 어디 있느냐고 추궁하자 아무 말도 못 하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증언도 이기적이고 변명일 수 있습니다. 스님만이 인간이 인간을 못 믿는 것이 바로 지옥이라 며 인간에 대한 믿음을 역설하지만 어딘지 공허하고 관 념적입니다. 농부가 버려진 아기의 옷가지만 챙겨 먼저 떠나고, 비가 그친 후, 나무꾼이 아기를 안고 라쇼몽을 나서자 스님의 공허한 말이 다시 귓가를 스칩니다. “덕분에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소.” 구로사와는 후에 그의 회고록 『자서전과 같은 것』에서 「라쇼몽」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 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원래 자기 자신에게까지도 솔직하지 못한 존재다. 그래서 과장하지 않고는 자기 자신을 말하지 못 한다. 실제의 자기보다 자신이 좀 더 나은 인간이라고 거 짓말을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이 거짓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죽어 가는 사람도 이 거짓 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87 법무사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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