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월호
사회정신의학, 사회병리치유하는학문 원장님이 정신의학을 공부하셨던 5, 60년대는 우리 나라에 정신의학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는데, 어 떻게그런시절에정신의학을공부하게되셨는지요? 저는 학교 때부터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나라와 민족 문제 등 거시적인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정치를 하고싶었어요. 그런데 두 삼촌의 독립운동으로 집안이 몰락한 역사가 있어아버지가늘 “정치는절대하지말라”고하셨죠. 그래서고등학교졸업후교사가되려고했는데, 학교에 서 공부를 좀 한다 하는 친구들이 모두 의대에 간다는 거 예요. 당시에는군의관이부족해의과대학을가면징병을 보류해줬거든요. 저도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의대를 지원하게 된 겁니 다. 의대에서정신의학을하게된계기는집안의영향때문 인지는 몰라도 저는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었을 때 세뇌된 북한사람들의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켜 하나의 국가로서 정신통일을이룰수있겠는가하는생각을많이했어요. 그래서 당시 미국 예일대학의 리프튼 교수를 무척 좋 아했죠. 리프튼 교수는 중공을 탈출한 사람들을 인터 뷰해서 『토탈리즘의 형성과 심리학』(Reform and the Psychology of Totalism: A Study of ‘Brainwashing’ in China)이라는 저서를 발표해 유명해진 정신의학자인데, 저도그런공부를하고싶었어요. 그래서경북대의학학사를마치고예일대로유학을갔 죠. 지금생각해보면그런게숙명인가싶습니다. 이시형 (사)세로토닌문화 원장 감사하는마음이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을만듭니다 이시형박사는용어조차생소하던 50년대사회병리현상을진단하고치유하고자하는 ‘사회정신의학’을전공, 한국인고유의 ‘화병’이라는용어를세계정신의학용어로등재한바있는대표적인정신의학자다. 재담넘치는언변으로대중적으로도큰인기를누렸던그는 2005년경기도화천에 자연치유센터를설립하고, 자연의학전도사가되더니최근에는 ‘세로토닌전도’에도열심이다. 그가전하는세로토닌에는어떤비밀이숨어있을까. 지금부터그의인생이야기속으로들어가그비밀을풀어보자. <편집부> 진행•방용규 본지편집위원장 / 대한법무사협회부협회장 박형기 본지편집주간 사진•김흥구 더블루랩 12 인터뷰 만나고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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