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는 타인을 위험으로부터 구조해 줄 의무를 부여한 법률 조항이다. 운동본부가 만들어지고 수년 뒤 2008년 10월, 국회에 서 일반시민의 응급구조 활동의 보호를 담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폴란드, 독일, 스위스, 네 덜란드 등에서는 구조의무 위반 시 직접적으로 처벌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일반시민의 응급구조 시 과실로 인한 사망, 상해, 손해를 감경 또는 면제한다는 내용을 담아 간 접적인 방식으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도입했다. 김왕규 씨 사건은 응급구조의 중요성을 일깨우기도 했 지만, 그에 앞서 망자의 행색이 깨끗했더라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행색에 따라 사람 을 차별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발견된다. 다만 그러한 차별이 사람의 생명을 앗을 수도 있다는 생 각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처럼 부작위에 의한 생명권의 침해는 차별적 시선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더욱 빈번히 목격되는 것은 소외 계층의 죽음에서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서 단독주 택 지하 1층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마 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 그리고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소외계층의 죽음은 주로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송파 세 모녀도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사회보장체 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과 법안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2014년 12월 송파 세 모녀법으 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및 「긴급복지지원법」 개 정안,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관련된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생명권 존중, 차별을 없애는 것부터 생명 보호를 위한 국가의 책임이 점차 강조되고 있지만 사회의 크고 작은 공동체 또한 그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 다. 공동체 내부의 상호부조는 사회를 결속하고 재생산하 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촌락사회가 해체되 고 도시화·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상호부조의 풍습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소외된 이웃’이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외계층을 자신들의 이웃이라고 생 각하지 않는다. 이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워 감추 거나 사라졌으면 하는 대상이고, 불가피하게 함께 살더라 도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대상이다. 그리고 비가시화 된 그들은 이따금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되어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권의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차별 또한 점차 강화 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서도 안 되는데 지금은 한 동네가 다른 동네를 차별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예 전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한동네에 섞여 살았지만 지 금은 그렇지 않다.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다르고 아파트 도 단지에 따라 거주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사 는 곳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상정하는 순간, 나보다 나은 누군가 가 존재하게 된다. 나보다 못한 누군가를 차별하는 순간, 나 역시 누군가로부터 차별당할 가능성에 놓이게 된다. 또 그러한 차별이 극단화됐을 때는 최상위 포식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모든 차별은 작위든 부작위든 생명에 대한 차별과 같 다.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자 모든 기본권의 전제인 생명권 의 존중은 차별 그 자체를 없애는 것에서 본질적으로 가 능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이 당연한 상식에서 말이다. 19 법무사 201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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