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3월호

로규정할수는없는일이다. 개인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광경은 오늘날 정치적 공론 시장에서도 심각하게 나 타난다.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분단에 갇혀 이념적 이분법이 고착되어왔다. 세 상에는 ‘좌’ 아니면 ‘우’밖에없다는생각이득세했고, 우리편이아니면적이라는생각 으로 연결되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은, 둘 가운데 하나로 분 류되고만다. 그앞에서인간의다원성은설곳이없다. 모든 인간을 둘 가운데 하나로 나누려는 폭력성도 문제이지만, 정체성의 선택에 대 한강요또한심각하다. 당신은어느편인가, 보수인가진보인가, 여당편인가야당편인 가, 둘가운데하나를선택할것을강요하는이런질문들이익숙해진지도오래이다. 하지만개인들이저마다고유하게갖고있는정치적사고를어떻게이것아니면저 것, ‘이쪽편아니면저쪽편’ 식으로강요할수있단말인가. 인간의생각은둘가운데 하나를강요받을정도로단순하지않다. 이런질문이폭력적인또하나의이유는정체성에대한고백을강요하고있다는사 실이다. 질문의 대전제는 누구나 하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을 타인 앞에서 진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정체성 혹은 이념을 물어왔을 때, 그런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익숙해졌고 주눅이 들어왔다. 그러나그것은인간으로서나의권리를내려놓는모습이었다. 나는그럴의 무가없다. 답변하고말고는나의자유이다. 나에게는답변하지않을권리가있다. 그래서프랑스철학자데리다(Jacques Derrida)는개인이어떠한정체성도갖지않 을 권리를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권리 중 하나로 ‘답변하지 않을 권리’를 꼽는다. 민주주의에서는 누구에게나 답변의 권리, 반론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부족하며동시에답변하지않을권리도필수적이라는것이다. 여기서 ‘답변하지 않을 권리’란 법적인 문제에서 불리한 진술을 거부하거나 침묵할 수 있는 권리 같은 특수하고 제한된 권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답변하지 않을 권 리’란 그에 앞서 어떤 정체성을 갖지 않을 권리, 나에게 강요되는 정체성을 거부할 수 있는권리를뜻한다. 이것은아무런공동체에도속하지않을권리, 익명적인누군가로 존재할권리, 비밀을지닌존재자로살아갈권리를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는 또한 “나는 가족의 일원이 아니다(je ne suis pas de la famille)”라고말한다. 데리다는 “나를 ‘당신들중하나’로간주하지말라, ‘나를당신들 가운데하나로셈하지말라’, 나는항상나의자유를유지하고싶다”고말한다. 그리고 어떤사람이가족의일원일때그가무리속에서자신을잃고말것을우려한다. 문화의힘 사람은무엇으로사는가?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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