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3월호

의전업무? 잘하면그만, 못하면꾸중 1967년대학졸업후큰뜻을품고응시했던제7회사 법시험을 시작으로 7년에 걸쳐 1차 합격, 2차 불합격을 연속하던 필자는 나이도 들고 위장병에 제11회 시험에 서 1차조차떨어지게되자 1974년, 법원공무원시험에응 시해그해 10월에법원서기보로공직생활을시작했다. 필자의 첫 발령지는 법원행정처 총무과, 맡은 일은 의전담당관 보조였다. 직급은 ‘법원서기보 시보’. 이 직 급은 나중에 ‘주임’ 또는 ‘실무관’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에는공식적으로 ‘의전담당보조’, ‘3단독보조’라는그다 지좋지않은명칭으로불렸다. 의전시보는 ‘의전’이라는 그럴듯한 말과는 달리 사법 부 요인 간부들의 온갖 잡다한 수발을 드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예를 들면, 사법부 간부들이 국경일 등 국가 행사에참석할경우주최측과연락해참석자명단을작 성하거나비표수령, 좌석확인등의일을하고, 해외여행 이 있을 경우 여권과 비자 발급·수령 및 여행일정, 호텔 예약, 공항출입국등의사무를처리하는일이다. 특히각국의대법원장, 대법관등이참석하는대법원 주체의 국제행사가 열리면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기획과 진행, 외부인사 영접, 공항의전 등에 만전을 기 해야 했다. 여기에 축하공연까지 끼게 될 때는 더욱더 복잡하고잡다한업무들이밀려왔고, 이를빈틈없이처 리해내기 위해 의전담당관과 필자는 국경일과 현충일 등의빨간날에도쉴수가없었다. 그래도 의전업무는 잘하면 그만이고 못하면 꾸중을 듣는, 그야말로 3D업무라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 수가 없었다. 법학을 전공한 필자 가 법률 실무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을 잘 해내려니 더욱힘들었던기억이난다. 한편, 필자가 담당한 업무 중 ‘의전’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당직순서를 짜는 일이었다. 정해진 순번대로 순서를 짜서 알려주기만 하면 되니까 처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인이불평하지않는당직순서를짜는일은사실신기 에가까웠다. 특히 기독교인과 등산 마니아들이 일요일 당직에 걸 리기라도 하면 뒤통수에 걸리는 온갖 따가운 불평들 을 감내해야만 했다. 사무치고는 아주 고약한 사무였 고,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부서에신참이들어오면번개처럼그 일부터떠넘겼다. 그해입사한필자가그불운의주인공 이었던것은당연한일이었던것이다. 대법원장연설문못잖게어려웠던장례식조사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힘들었지만 성취감을 느꼈던 일도 있었다. 우연히 법원행정처장의 연설문을 작성했다가 나름 실력을 인정받아 대법원장의 연설문 초안을작성하는업무까지맡게된것이다. 당시 대법원장이 참석하는 웬만한 행사의 연설문 초 안은 필자가 담당했는데, 지금도 1979년 주재황 전 대 법원판사의수원지방법원청사준공식치사초안을작 성하고, 총무과장과 함께 크게 칭찬을 받았던 일을 떠 올리면절로미소가지어진다. 하지만 행사는 왜 그리도 많았던지 꼭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했다. 당시는 컴퓨터도 없던 때라 연설문 한 편 쓸 때마다 도서관을 뒤지고, 관계 전문가와 학자, 교 수등을찾아가물어보면서겨우완성해놓고돌아서면 다시다음연설이기다리고있는식이었다. 연설문 작성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장례식 조사였 다. 대개는보통 3일장이통례이므로부음을받은후이 틀 안에 그럴듯한 조사 한 편을 작성해야 했다. 부음을 받자마자 필자는 인사과로 달려가 고인에 관한 기록을 87 법무사 201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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