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4월호

를 넘어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이고 구 조화된 폭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위 사건의 여학생들도 이러한 여성운동의 변화 속에서 똑같은 행동을 ‘치기’에서 ‘행패’로, ‘행패’에서 ‘성폭력’으 로 점차 인식의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남학생들 의 경우는 그 변화가 더디게 일어났다. 해당 대학에서 자 제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고, 그마저 도 총학생회와 일부 남학생들에 한정됐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00년대가 되자 그 같은 행동은 거의 사라졌다. 남학생 모두가 자신들의 ‘놀이’를 ‘성폭력’ 으로 인식하고 자제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 같은 행동이 커다란 저항과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게 된 것이다. 발화되지 않은 성폭력, 왜 은폐되었나? 성폭력은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등을 모두 포괄하 는 개념으로, 성을 매개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 는 모든 가해행위를 뜻한다. 위와 같은 대학생들의 사례 는 이러한 성폭력 중 공개적이고 집단적이었지만, 폭력수 위는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보다 심각한 것은 사적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이 루어지는 성폭력 사건들이다. 이 사건들은 폭력의 수위도 높고 그만큼 피해도 크지만, 사적으로 은밀하게 이루어지 는 경향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수면 아래에 숨겨진 채 발 화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치심과 모멸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은 피해자를 침묵 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들이다. 가정폭력의 경우만 해도 생 명의 위태로운 지경이 되지 않는 한 법의 보호를 요청하 는 일은 많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 트폭력도 피해자의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많은 경우 피해 자들은 상대가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했다거나 술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상대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거나 거꾸로 자신이 폭력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자책감을 갖기도 한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처럼 성적 요소가 개입된 경우는 피 해자가 갖는 수치심이 가정폭력에 비해 더 큰 만큼 발화 도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성중심의 성문화에서 남 성의 성경험은 호기로운 행동인 반면, 여성의 그것은 성적 방종과 문란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어렵게 성폭행 사실 을 털어놓더라도 “니가 짧은 치마를 입었으니”, “니가 모텔 에 따라갔으니” 그런 일을 당했다는 식으로 오히려 피해 자가 비난을 받거나 “꼬리를 친 거 아닌가” 하는 소위 ‘꽃 뱀’ 논리의 2차 가해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물리적 위력에 의한 강간조차도 성관계에 합의했는지 가 쟁점이 아니라,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스 스로 입증해야만 한다. 1988년에는 ‘변월수’라는 주부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간범의 혀를 잘랐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어 과잉방어로 징역 1년을 구형받은 일도 있었다. 같은 경우로 무죄가 선고된 것은 2012년에나 가능했다. 피해자들의 발화를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여 성문제나 가정문제는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돼 오랫동안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돼 왔기 때문이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배우자 강간은 죄가 되지 않았다. 1990년대부터 ‘성적 자기결정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여성 단체의 주장이 나오고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 지만 부부강간의 피해자는 최초의 주장 이후 20년이 넘 어서야 실질적인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가정폭력 또한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1983년 ‘여성의 전화’가 개설되면서 ‘매 맞 는 아내’의 사례가 수없이 보고됐지만, 「가정폭력방지법」 은 1997년에야 제정됐다. 그조차도 남성들의 반대로 여성 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폭력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를 방 지한다는 목적으로 희석시킨 후에야 제정이 가능했다. 성 희롱에 대한 처벌 또한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 되면서 가능해졌다. 17 법무사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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