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5월호

부책식 등기부와 가리방의 시대 필자는 1965년 5월, 제1회 법원임용시험에 합격해 그 해 11월 16일자로 서울민사지방법원 포천등기소로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의 등기부제도는 지금과는 많이 달 랐다. 지금 들으면 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인 가 싶겠지만, 65년도에도 등기부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사용되던 부책식 등기부가 그대로 사용되었다. 실로 제본되어 하나의 책처럼 묶여 있는 부책식 등기 부는 1권에 필지마다 표제부와 갑구, 을구를 50필지씩 기 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가로쓰기였다가 세로쓰기로 바 뀌었는데, 등기사항을 기입할 때는 골이 파인 유리펜에 먹물을 찍어 사용했다. 그런데 유리펜으로 일일이 먹물을 찍어가며 기재하다 보니 지나치게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등장한 게 고무도장이었다. 각 등기소에서는 소유권이전등기, 근저당권설정등기, 소유권이전등기청 권가등기 등 대부분의 등기기재 양식을 고무도장으로 만들어 기재할 때마다 등기부에 검정 잉크 스탬프를 찍 어 그 빈칸을 채우는 방식으로 기재했다. 그러나 이 고무도장도 토지의 분할 등 수 필지의 등 기사항을 기재해야 할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전사를 했다. 초를 먹여 만든 등사원지를 쇠로 만든 ‘가리방’(등사판)에 올려놓고 필기를 한 후 등 사원지에 잉크를 묻힌 다음, 접어서 잉크가 새지 못하 게 한 뒤에 등기부에 밀어서 기입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등기부에 잉크가 번져 등기사항이 뭉개 져 버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는데, 그러면 별수 없이 등기부의 상당 부분에 X표시를 한 후 등기공무원이 날 인하고, 다음 칸에 기재했다. 이러다 보니 전사된 등기 사항이 마모되는 등 문제가 생기기도 해서 함께 전사된 다른 필지의 등기사항을 참조, 보완해 기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계속 사용되던 부책식 등기부에 변 화가 온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1981년 정부는 부책 식 등기부제도를 폐지하고, 필지마다 개별적인 카드를 만들어 표지를 편성한 ‘필지별 개별식 등기부’와 여러 필지를 1권의 바인더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합철해 편성한 ‘바인더식 등기부’제도를 도입했다. 81년 개별식 등기부 등장, 부피 얇아 분실사고도 민원인의 편리와 관리의 효율성을 위한 이러한 등기부 제도의 변화는 의미가 있었지만, 일선에서는 부책식 등 기부에 비해 현저히 얇은 두께를 가진 등기부로 인해 의 외의 사고들이 발생해 골치를 썩였다. 특히 필지별 개별 식 등기부는 표제부, 갑구, 을구에다 표지를 붙인 형태로 전체가 2, 3장 정도에 불과해 더욱 분실사고가 잦았다. 예를 들어 모 등기소에서는 등기부를 열람하던 민원 인이 등기부를 몰래 접어 자신의 코트에 넣고는 법무사 사무소를 찾아 궁금한 점을 문의하다 발견되어 등기부 를 반환하는 일도 있었다. 이 외에도 등기부가 분실된 채 끝내 발견되지 않아 새롭게 절차를 밟아 회복하는 경우도 있었고, 개폐가 쉬웠던 바인더식 등기부의 바인 더를 풀어 등기부를 빼내가는 사고도 종종 일어났다. 민원인이 아닌 등기소 직원의 실수로 인한 사고도 잦 았는데, 등기부를 열람한 후 엉뚱한 곳에 꽂아두었다 찾지 못해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사고가 한 번 터지면 근무시간은 물론이고 퇴근 이후, 심지어는 주말 까지 출근해 온 등기소를 뒤져야 했는데, 1주일이 지나 도록 발견을 못해 문책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등기소 직원들의 애를 먹이던 등기부 도 1994년 등기부 전산화가 시작되고 98년부터 순차 적으로 사용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이런 사고 들도 웃으며 떠올리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으니 흐르는 세월이 무상하다. 83 법무사 201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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