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6월호
67년평창등기소, 관내법무사는 5명 1967년 9월 15일, 33세의 늦은 나이에 법원 9급 공 무원으로임용된필자가처음으로발령을받은곳은지 난 2월 동계올림픽 개최지이기도 한 평창의 ‘춘천지방 법원평창등기소’였다. 오대산 밑에 소재했던 당시의 평창등기소는 영동고 속도로가 생기기 전이라 하루 2회 운영하는 서울-평창 간시외버스를타고약 9시간을달려야도착할수있었 던오지중의오지였다. 당시 평창등기소에는 등기소장인 법원서기(현재는 주사) 1명과 정리 1명, 사환 1명으로 3명의 직원이 있었 고, 관내에는 5명의법무사(당시는사법서사)가있었다. 법조 경력이 있는 법무사 1명과 특별채용시험을 거쳐 법원장이자격을인정한법무사가 4명이었다. 이런작은지역의등기소에업무량이많을리는없었 지만, 문제는 모든 업무를 직접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는것이었다. 타자기가 없으니 등기부 기입도 한지로 묶인 등기부 에 먹물로 기재해야 했고, 복사기 같은 것은 더더욱 있 을리없으니등기부등본신청이들어오면먹지를받치 고일일이필사해교부해야했다. 새로부임한 67년설무렵에는갑자기 4천통의등기 부등본 신청이 밀려들어 결국 집에도 가지 못하고 4천 통의등본을필사하며보냈던적도있었다. 성능이 좋지 않은 펜으로 4천 통의 등기부등본을 필 사하노라면나중에는볼펜의잉크가번져처음부터다 시 써야 하는 때도 있었고, 등본 작성용지가 찢어져 새 로쓰거나추위에손이굳거나손가락이굽어드문드문 손을녹여가며작업을해야하는경우도있었다. 일이 고되다고 등본 발행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일 이니 당시 등기소 직원들은 당연한 일로 여기며 큰 불 평없이그일들을해냈다. 28,000건약식사건, 6개월만에 700건으로 어느덧 공무원 생활 6년차에 접어들었던 1973년, 필 자는 법원주사보로 승진해 서울형사지방법원 제3과 약식계로 발령을 받았다. 발령 후 필자는 평소 잘 아는 당시 임기호 법원장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법원장은 무척반가워하면서 “잘왔네. 자네를기다리고있었어. 날 좀 따라와 봐”라고 하며 어디론가 향했다. 영문도 모 르고뒤쫓아간곳은다름아닌약식사건창고. 법원장은 창고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더니 한쪽 바닥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서류더미를 가리키며 “저 미제 약식사건들 때문에 행정처장님께 책문을 당 할 지경이야. 윤 계장이 책임지고 해결하게”라고 지시 를하는것이다. 약식사건은 약식명령사건으로, 지방법원의 관할사 건에대하여검사의청구가있을때공판절차를거치지 않고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을 조사하여 피고인에게 벌 금·과료·몰수의형을과하는재판절차를말한다. 필자는 그때부터 미제 약식사건 해결을 맡아 곧바 로 창고 안에 있는 약식기록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1967~1972년도까지 창고 안에는 6년분의 약식사건이 누적되어있었다. 그중에는신건도있지만, 타자만치고 등본을 발송하지 않았거나 등본은 작성되었는데 송달 은 하지 않은 사건, 송달은 했는데 확정되지 않은 사건, 확정되었는데검찰에기록을넘기지않은사건등등여 러 사건이 혼재되어 있어 미제사건의 건수를 파악하는 것자체부터가난감한상황이었다. 필자는 다음 날 법원장을 찾아가 창고에 6층의 선반 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곧 선반이 설치되었고, 필 자는연도별로기록을분류해각층마다체계적으로비 치, 정리했다. 모든 작업이 끝난 후 전체 기록을 파악해 보니, 미제사건의총건수가 28,000건이나되었다. 다시 법원장에게 보고해 타자수 6명과 임시직원 6 85 법무사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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