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2월호

카돼지열병(ASF)’의 유입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동물학대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살 처분 가금류나 가축에 대한 관심은 지구 온난화로 사냥 터를 잃은 북극곰이나 포경 위협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학대당하다 버려진 반려견들 에 대한 관심과 연민만큼 충분치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동물권 회복을 위한 해결 역시 본질보다는 현상에 치 중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불쌍한 북극곰 과 고래를 생각하며 지구온난화의 문제와 포경선을 비난 하고, 반려견을 유기하는 양심 없는 견주나 불법 개 도축 업자를 욕한다. 살처분의 경우도 질병관리를 제대로 해내 지 못한 정부당국을 비난할 뿐이다. 그러나 살처분의 책임이 과연 질병관리본부 한 곳에만 있을까? 북극곰이나 고래 포경, 유기견의 문제가 단순히 포경선 업체, 견주, 도축업자에게 책임을 물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동물 학대의 본질은 탐욕, 인권 문제 본질도 다르지 않아 조류독감과 구제역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살처분되는 것은 질병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장식 축산’ 때문이라 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공장식 밀집사육이 각종 세균 과 바이러스의 창고 역할을 하면서 이제는 소독과 방역만 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공장식 축산의 배경에는 인간의 탐욕, 그리고 그러한 탐욕을 이용하는 자본의 탐욕이 있다. 더 많은 고기를 더 싸게 먹기 위한 인간의 탐욕,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 익을 남기려는 자본의 탐욕이 공장식 축산과 그 결과로서 살처분의 주범이다. 살아있는 동물을 물건처럼 다루고 점 점 더 좁은 공간에서 기계적 생산행위 외 생명체로서의 모든 권한을 박탈한 채 사육하다가 그로 인해 질병이 찾 아오면 잔인하게 살처분 해 폐기하는 그 모든 과정이 바 로 인간과 자본의 탐욕의 극한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극대화한 시 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추동하는 힘이 바로 ‘탐욕’이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탐욕에도 한계가 있었다. 천석지기, 만석지기는 있어도 백만석지기, 천만석지기는 불가능했다. 자연의 경계가 있었고, 인간의 경계가 있었 다. 지리적인 한계가 부의 끝없는 확장을 제한했고, 인간 사회의 생활공동체 역시 무한대의 확장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자본의 힘은 그 모든 경계와 한계를 뛰어넘었다. 무한대의 자본은 인간과 자연을 무한대로 착취하기에 이 르렀고, 그것의 마지막 종착지가 동물에 있어서는 살처분 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탐욕이 살처분한 것은 동 물만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살처분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종족 우월주의에 빠져 다른 종족을 살처분한 인종청소, 층간소음을 해결하지 않는다고 경비원을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갑질행위, 생김새가 약간 다르다 해서 동급생 을 왕따시키고 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학교 폭력, 이러 한 일들이 종 차별주의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동물을 인간과 다른 종이라 하여 학대하고 착취하는 것 과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이 낮다고 해서 같은 인간을 차별하고 따돌리는 행위가 과연 다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까? 물론 동물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처럼 자신과 다른 사 람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려는 ‘선량한’ 다수가 훨씬 많다고 믿는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그 같은 선량함이 내 주변의 이웃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터키 해안가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싸늘한 주검으 로 발견된 세 살배기 아기, 아일란 쿠르디를 추모하는 마 음이 그 아비일지도 모를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똑 같이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인권, 그것이 나로부터 출 발한다면 그 확장은 바로 내 옆의 이웃에서 시작하는 것 이 옳지 않을까. 19 법무사 2018년 12월호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