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추석 등 절기마다 찾아오는 명절에는 3박 4일 농악 과 음주가무를 즐기며 고단함을 달랬었다. 어머니들은 아침저녁 빨래 들고 모이는 공동 우물가에 서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 사이사 이는 동네 처녀총각들의 혼사와 상여소리 애달픈 초상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시설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골목과 도랑(개천), 저수지와 산등성이가 모두 놀이터였다. 동네 어른들은 남의 밭에서 가지를 따 먹는 조무래기 가 누구네 아들인지 훤히 알았고, “이놈아, 생가지 많이 먹으면 입술 붓는다. 한 개만 먹어라” 하며 지나갔다. 행 여 어떤 아이가 위험스럽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지 게 벗고 아이부터 챙겼다. 황혼녘이면 동네는 아이들 부르는 엄마들 고함으로 요란했지만 집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동네 누군가네 집에서 놀다가 그 집 형제자매들 틈에 끼여 밥을 얻어먹고 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 두운 저녁이면 등잔불이 흐르는 초가집마다 웃음소리 가 담벼락을 넘었고, 몇몇 집은 어른들의 술추렴으로 왁 자지껄했다. 그랬던 시골에 어느 날부터 ‘서울 광풍’이 불었다. 자고 나면 동네 형과 누나들이 서울로, 도시로 떠났고 아예 온 가족이 떠나는 집도 있었다. 그 틈바구니에 묻혀 떠나온 이들로 우주만큼 거대한 도시의 아파트 단지가 세워졌 고, 어른들의 모든 촉각은 아파트 가격에 집중되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팎에서 위아래 층에 사는 이웃 을 만나도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같이 탄 사람들의 풍경 처럼 묵묵히 허공이나 핸드폰에 시선을 둔 채 각자의 집 으로 향한다. 집 안 역시 마찬가지다. 할아버지와 손자, 부모와 자녀 등 동거 가족들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시간보다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각자의 볼일을 보는 시 간이 더 많다. 어른들은 TV, 아이들은 핸드폰에 묻히고, 젊은 부부 는 돌아누워 ‘카톡 메시지’로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 ‘멀 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도 이젠 쓸 일이 없다.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우리네 삶은 개인이 전부여서 동네, 마을, 공동체 같은 풍경은 전설 이 됐다. 그래서 「나자연(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이 떴다. 기계처럼 메마른 도시 생활에 염증이 난 어른들이 옛날 이 그리워 대리만족을 해서일 것이다. 필자 역시 「나자 연」 열성팬이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저렇게 혼자는 도 저히 못 살겠고, 예전 마을처럼 여러 가구가 마음 열고 같이 사는 동네라면 참 좋겠다’고. 실제로 귀농귀촌을 단행했던 도시인들 중 정착에 실패해 다시 도시로 회귀 하는 사람이 많다. 신문기자 조현의 책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는 ‘설마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은 ‘마을’을 자세히 취재했다. 3년 동 안 우리나라 공동체 마을 18곳, 외국의 5곳을 돌았다. 멀 리 갈 것 없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28통 공방골목길’ 에 도시 사람들이 꿈꾸지 못할 ‘사람 사는 동네’가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는 ‘신흥마을’이 있다. 서울 직장 인 한귀영 씨는 공방골목으로 이사 와 이웃들과 ‘정신없 이 어울리다 보니’ 병이 나았다. 신흥마을 사람들은 그 곳의 삶이 ‘해외여행보다 재미있다’고 이구동성이다. 파 주 공방 동네는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신흥마을은 뜻 맞는 이들의 계획적 이주였다. 23곳 마을의 형성 방식 과 목적은 다양하지만 그 속의 삶은 모두 비슷하다. 사 람 사는 세상 맛에 푹 빠진다는 것이다. 설마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은 동네들 취재기 91 법무사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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