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군은 포정이 귀신같은 솜씨로 소를 잡아 바치 자 이를 칭찬하면서 이렇게 말했단 말씀이야. ‘소 잡는 기술이 매우 훌륭하구나.’ 이보다 더한 칭찬이 없었지 만 포정은 문혜군의 칭찬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정색 하고 이렇게 말해요. ‘제가 소를 잡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감히 도(道)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소를 잡았을 때에 는 보이는 것은 온통 소뿐이었지마는 3년이 지난 후 에는 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감각의 작용을 모두 멈춰버리고 오직 마음의 움직임을 따라 소의 뼈와 살 사이에 난 자연 의 길을 헤쳐 나갔기 때문에 이룬 도인 것입니다. 솜씨 좋은 백정은 1년에 한 번씩은 칼을 바꿉니다. 이것은 살을 무리해서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꿔야 합니다. 이것은 칼로 뼈를 베 기 때문이지요. 저는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 아 왔지만 한 번도 칼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소의 뼈와 살에는 간격이 있지만 저의 칼은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칼날이 간격이 있는 소의 살과 뼈를 가르기 때문에 19년 동안이나 칼을 써왔지만 칼 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 요.’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단 말예요.” 일장 강의를 마친 장자 선 생은 또 훈장 버릇이 나왔다 며 겸연쩍게 웃었다. 물론 그렇다. 도는 공맹의 문자에서만 깨치는 것이 아니라 포정의 칼 솜씨든 알파고와 세기의 바둑 대결 을 펼쳤던 이세돌이든 어느 한 방면에서 일가를 이루 면 궁극에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마련이다. 장자 선생은 무위자연을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아 니라 실생활에 있어서도 도인에 가까웠다. 누구를 대 하든 모나지 않았고 항상 너그러웠다. 입가에는 잔잔 한 미소가 흘렀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런 그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늘그 막에 얻은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슬하에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두 었다. 위로 딸 둘을 낳고 늘그막에 아들 을 낳은 것은 그가 동양사상에 심취한 것과도 일견 연관이 있는 듯하다. 막내는 제법 똘똘해서 장자 선생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대학도 명문 법 대에 진학하여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정작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할 때가 되자 문제가 생겼다. 막내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 되어 형사재판을 받았다. 장자 선생도 막내아들 문제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 이 도인이라기보다는 아버지였다. 눈 한 번 딱 감고 신 념 한 번 굽히고 입대하면 될 것을 왜 그리 못나게 사 서 고생하느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장자 선생과 내가 가입한 시민단체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 「병역법」 의 위헌 청구에 발 벗고 나섰다. 위헌 청원서 서명운 동을 벌이기도 했다. 작년 여름 드디어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 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결 장자 선생으로부터 한 판 잘 얻어먹은 빚을 갚고자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고 있던 차, 작년 늦가을 즈음 대법원에서 현역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선고하였다. 86 문화가 있는 삶 + 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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