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5월호

화개장터 삼거리에 이르러 인근 주차장에 차를 주 차하고 한창 시장하던 터라 바로 식당을 찾아들었다. 이곳 화개장터는 조영남의 노래로도 유명해졌지만 그보다 먼저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곳이 기도하다. 지금도이곳에는 ‘옥화주막’이라는옥호로 식당을 하는 곳이 두 곳 있다. 어느 곳이 소설 「역마」에 나오는 옥화주막 터인지 는 모르겠지만, 새삼스레 소설 「역마」의 주인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옥화는 삼거리 주막에 남고, 체 장수 영감과 딸 계연은 구례 쪽으로 떠나 고, 옥화의 아들 성기는 나무엿판을 메고 하동 쪽으 로 발길을 돌리는 쓸쓸한 장면이 화개장터에 오니 실 감이 났다. “최 형, 그래,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식당에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애써 참았던 궁금증 부터 물어보았다. 달변이던 그가 물컵만 돌리며 한참 뜸을 들이더니 창밖을 내다보며 입을 열었다. 날카롭던 눈빛이 흔들 리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한 십여 년 정도 되었나? 내가 갑자기 대전을 떠난 것이.” 아마도 십 년은 더 된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만나 지 못했던 지난 역사를 줄줄이 엮어 구슬처럼 토해 내었다. 그의문학에대한열정은시집두권의열매를맺기 도했지만, 그에게는다른어떤광기가있었던가, 호승 심이었을까. 그 당시 그에게서 이상스러운 조짐이 조 금씩 보이기시작한 건사실이었다. 그가설시하던궤 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다. 나는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데 너는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으니, 너는 2 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고 나는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2차원의 세계와 4차원의 세계가 함께 막걸리 를 마시며 섞여 있으니 우리는 함께 3차원이 되었다.” 그는 우리가 한창 시 한 편을 안주 삼아 열변을 토 하던 무렵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고, 일시적으로 돈을 따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알거지가 되어갔다. 급기야 살던 집까지 처분하고 친지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그도 주식투자로 망해가는 전 형적인 루트를 밟은 것이다. 주위에더이상손을벌리기어렵게되자직장에사 표를냈다. 거액의퇴직금에건곤일척한판승부를걸 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운명의 여신은 외면하고 말았 다. 빚쟁이에 쪼들려 여러 산사를 떠돌았다. 아내의 요구에이혼서류에도도장을찍었다. 더이상대전에 미련이 없어졌다. 그는 빈손으로 서울로 올라가 영업용 택시를 몰았 다. 이제야 겨우 개인택시 하나를 마련하였다. 물론 그가 개인택시를 자랑하려고 차를 몰고 내 앞에 나 타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쉽사리 본론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화개장터를한바퀴돌았지만서먹한분위 기는 가셔지지 않았다. “최형, 정말오랜만에만났는데, 대전에가서술이 나 한잔하고 헤어지세.” 나는 그가 분명 무언가 할 말이 있다고 짐작했다. 그는 순순히 운전대를 잡고 대전으로 향했다. 우리 86 문화가있는삶 + 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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