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더니 60대로 보이는 흰머리의 남성이 포착됐 다. 그는 항공점퍼 상의를 입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에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이 남성은 휴대용 철제 사다리를 타고 숭례문 철장을 넘어 들어갔다. 얼 마 후 시뻘건 불꽃과 함께 흰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당시 숭례문을 관리하고 있던 업체의 직원은 퇴근 하고 CCTV만 켜진 상태였다. 문제는 CCTV 화질이 었다. 범인의 모습은 찍혀 있었으나 화질이 좋지 않아 얼굴 식별이 불가능했다. 경찰은 방화의 경우 재범률 이 높다는 것을 파악했다. 미국 법무부는 방화 범죄 의 재범률이 57.7%라고 발표한 적도 있다. 당시 경찰은 범죄정보관리시스템인 ‘심스(CIMS)’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것은 범죄자와 관련된 정보를 데 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초동수사 단계에서 용의자를 찾도록 도와주는 검색엔진이다. 여기에는 2004년 이 후 발생한 천만 건이 넘는 범죄기록이 담겨 있다. 범인의 진술 내용과 범행수법, 성장 과정, 심리상태, 외모와 범인의 특징, 사법처리 결과까지 키워드 검색 을 통해 한눈에 찾아볼 수 있다. 경찰은 이런 방식으 로 용의자를 추적해 나갔다. 최초의 키워드는 ‘방화’와 ‘문화재’였다. 이 가운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던 사건으로 재차 용의 자를 좁혀갔고, 최종 3명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이 중 두 명은 수감 중이었고, 단 한 명만 남았다. 그가 바 로 채종기(69)였다. 그는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 을 방화한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채 씨의 거주지에 형사대를 급파했다. 그리 고 사건 발생 23시간 만에 인천 강화군 하점면에서 그 를 검거했다. 채 씨는 목격자들의 증언과 비슷한 인상 착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는 사다리, 의류, 시 너병 등이 발견됐다. 또 신발에서는 숭례문에 칠해져 있는 것과 동일한 성분의 시료가 채취됐다. 경찰은 채 씨를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압송해 범행을 추궁했다. 채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불을 질렀다”며, 소유 하고 있던 토지 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했 다고 자백했다. 방화범 채 씨, 도로수용 보상액 불만으로 방화 자백 채 씨는 2남2녀의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1970년대부터 경기도 고양시 주엽동에서 배추 등을 재배하며 살았다.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젊었을 때 독학으로 주역을 공부했다. 이것을 밑천삼아 1995 년까지 고양시 일산동에서 사주나 토정비결 등을 봐 주는 철학관을 운영했다. 평소엔 말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성격이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 도 어쩌다 반주로 한 잔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괴팍해진 것은 2001년 그의 단독주택이 도로로 국가에 수용되면서다. H건설이 아파트를 지 으려 그의 토지 약 99㎡(30평)를 수용하려 했다. H 건설은 공시지가인 9천600만 원보다 많은 1억 원(건 물 값 포함)을 제시했다. 하지만 채 씨는 “인근 시세보 다 터무니없이 낮다”며 4~5억 원을 요구했다. 건설사 는 채 씨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자 채 씨는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관할 고양시청을 비롯해 청와대에도 진정서를 넣었 다. 고양시청에는 2주에 한 번 정도 찾아가 보상액을 높여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시청에서는 채 씨에게 보상액 책정에 대해 자세하 게 설명했지만 그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채 씨 의 아내 이 모 씨(70)가 “보상금으로 편하게 아파트에 서 살자”고 말했으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채 씨 는 건설사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H건설은 2006년 3월, 1억 원의 공탁금을 걸고 채 씨 집에 철거반원들을 보냈다. 집이 철거되자 아내 이 씨는 “이렇게 된 것은 당신 탓”이라며 이혼을 요구 했다. 25 법무사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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