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6월호

도 있었다. 일본학과에 들어온 동기는 각각 다르지만 공부를 함께 하면서 학우들과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어떤 때 는 일본사람들의 친절함에, 어떤 때는 일본인들의 맹 목적인 집단성과 천황에 대한 충성심에 함께 놀라기 도 했다. 이러한 특성은 미국인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 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일본어도 배우지만 단순히 어학만 공부하 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일 본에 대한 총체적인 면을 배운다. 오늘은 기말고사 날이다. 시험이 끝나고 의기가 투 합한 사람끼리 한잔하기로 했다. 모두들 산전수전 다 겪은 사회인이지만 학생은 학생이고 시험은 시험이다. 시험 끝날 때의 해방감이란 역시 젊은 날의 추억의 주 점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내가 주창하여 우리동네 포차로 향했다. 다들 바빠 서 가고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 박 부장, 초등학교 방 과후 일본어 교사 명 선생, 어머니가 일본 사람인 과 대표 김 선배, 일본에서 10년간 살다 온 전업주부 박 선생,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 홍 총각, 나까지 여섯 명 이 보무도 당당하게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포차로 몰려갔다. 긴장감이 풀어지자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먼저 술 잔이 한 순배 돌았다. 황혼이 지기 전부터 알탕이 지 글지글 끓고 있었고 두부두루치기의 매콤한 맛이 혀 를 잡아끌었다. 이윽고 오늘 시험문제에 대하여 난상 토론이 이어졌다. 명 선생이 후다닥 포문을 열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평가 해야 되나요? 성공한 것일까요, 아니 면 일본제국주의의 씨앗이었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들 잠잠하던 차에 어머니 가 일본 사람인 과대표가 나섰다. “대부분 메이지유신을 일본이 부국강병과 문명개화 의 시대로 나아가게 된 전환점이요, 그동안 중화질서 의 우산하에 있었던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밀어내고 문명기준의 역전을 이룩해 낸 기념비적인 일대 사건 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서세동점의 시대상황에 부 합하는 문명기준의 역전을 이루어내지만 현재의 시 점에서 바라보자면 결국은 이웃을 하나하나 집어 삼 키는 제국주의로 치닫게 되는 첫걸음이 아니었나 하 는 의문을 품게 되지요.” 김 선배는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지만 생각도 진 보적이고 어머니가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에 대해서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평소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막내 홍 총각 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나타냈다. “저는 일본에 대해서 딱히 싫어하는 감정은 없어 요. 오히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감탄할 뿐이에요. 다만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 과목을 배우면서 일본이 우리나라에 많은 빚을 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 은 들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일본을 미워하지만은 않 아요. 무언가 21세기에 걸맞게 새로운 선린관계를 정 립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래. 그렇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될 게 있어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일본계 회사인데 평소 업 무 때문에 일본 사람들과 접할 기회가 많아요. 일본 인들은 평소에 매우 친절하고 합리적이야. 하지만 국 가 차원에서 본다면 식민지지배에 대한 철저한 반성 과 사과도 없이 자기 나라 이익만 대변하고 있는 현실 에서 어떻게 서로 손을 잡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 갈 수 있겠냔 말이에요?” 박 부장이 조금 흥분해서 언성을 높였다. 이쯤해서 모두 함께 건배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86 문화가 있는 삶 + 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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