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7월호

여객선 ‘서해훼리호’의 위험한 출항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 딸린 아름다운 작은 섬 위도. 섬의 모양이 고슴도치를 닮았다 해서 고슴도치 ‘위 (蝟)’ 자와 섬 ‘도(島)’ 자를 써서 ‘위도’라고 부른다. 허균의 「홍길동전」에 나온 이상향의 나라 ‘율도국’ 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도는 아름다운 겉 모습과는 달리 아픔과 상처가 많은 ‘비극의 섬’이다. 1993년 10월 10일 일요일 아침. 위도 파장금항에는 단체관광이나 낚시를 위해 위도로 들어왔다 육지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당시 위도와 부안 격포 항 사이에는 ㈜군산서해훼리 소속의 110t급 여객선인 ‘서해훼리호’가 1일 1회 정기 운항했다. 이 배를 놓치면 육지인들은 싫든 좋든 위도에서 꼬 박 하루를 더 지내야 하고, 다음 날인 월요일에는 회 사를 결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어떻게든 배를 타 려고 기를 썼다. 그런데 그날따라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돌풍이 불고 파도가 높게 치면서 정상적인 운항이 불가능했 다. 초당 10~14m로 부는 북서풍 때문에 높이가 무려 2~3m에 이르는 대형 파도가 내리쳤다. 기상청에서도 “파도가 높고 강풍이 불며 돌풍이 예상되므로 항해 선박은 주의를 요한다”는 방송을 내보냈다. 배는 오전 9시에 출발해야 하지만, 날씨 때문에 출 항을 미루고 있었다. 출항이 늦어지자 터미널 안이 웅 성이기 시작했다. 표를 미리 구한 손님들은 하늘만 쳐다보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커 먼 하늘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더욱 험악해 져만 갔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언제쯤 배가 출항하느냐” 는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그냥 빨리 출발하자” 며 거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독 촉에 고심하던 선사 측은 얼마 후 출항을 강행키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이 배의 정원은 승무원 14명을 포 함한 221명. 그러나 이날 배에 탄 승선인원은 총 362 명으로 무려 141명이나 정원이 초과된 상태였다. 화 물도 적재기준을 훨씬 초과했다. 그러나 오전 9시 40분경, 서해훼리호는 긴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출항을 시작했다. 1993년 10월 10일, 부안 격포항과 위도 사이를 매일 1회 정기 운항하는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전북 부안 임수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배에 있던 위도주민, 관광객, 낚시꾼 등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부랴부랴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진상을 조사한 결과, 침몰의 원인은 과적과 정원초과였다. 서해훼리호는 원래 승선 정원을 141명이나 초과해 태웠고, 화물적재 기준도 훨씬 초과했다. 결국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인재사고였던 것. 정부는 곧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을 전격 해임하고 관련공무원들도 문책했지만, 이들 중 누구도 구속되거나 실형을 산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21년 후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맞았다. 29 법무사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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