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8월호

그럼 달리 방법이 없으니 성년이 된 자녀에게 아빠를 찾 아가서 지분을 넘기는 절차도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권했 더니 자기가 고생고생 하며 키운 자식을 그 뻔뻔한 남자에 게 보내 사정하는 것도 구차하여 싫다며, 또 휴지를 서너 장 뽑아 눈물을 닦는다. 이 여인의 가슴엔 전 남편에 대한 애증의 응어리가 사무 치게 맺힌 듯하여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처럼 사무실의 공기조차 서늘하다. 2시간 상담 후 슬며시 사리진 의뢰인 한참을 지켜본 뒤 여인에게 말했다. 이제 40초반의 나이에 그렇게 미운 감정만 품고 있으면 남은 인생 어떻게 살겠느냐! 잊을 건 빨리 잊고 새 출발하 는 것이 본인에게도 자녀에게도 더 좋은 일이니, 마음을 정 리하는 게 좋겠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슬픔, 고뇌 없는 사 람이 없는데 주변에 관계 맺은 사람 한번 둘러보시라, 누구 나 아픔을 겪었지만 삭이고 사는 것이지 아픈 상처를 자꾸 헤집어 상처를 곱씹고 덧나게 하면 종국은 자기 파멸밖에 더 있겠느냐 설득하면서, 나만 해도 살아온 인생 뒤돌아보 니 실패와 좌절이 더 많아 지금도 꿈속에서 탄식하다 잠을 깰 때가 종종 있다며 내 아픈 과거까지 들먹이며 여인을 위 로하고 설득하다 보니 상담이 꽤 길어졌다. 때마침 다른 상담인의 전화를 받으라는 직원의 전갈로 내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전화를 받는 동안 여인은 고맙다 는 인사를 하며 슬며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무려 2시간 가까운 상담을 하며 등기부등본 3통 열람, 판결문과 서류 등 복사한 양이 스무 장 정도다. 달리 상담 에 대한 급부를 받은 바 없이 여인이 마시고 간 박카스 병 과 커피 잔을 치우던 직원이 “좀 염치없는 사람 같다”는 말 을 할 때, 그래도 나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으니 그나 마 다행이고, 민원인의 고민이 너무 커서 그럴 것이라고 자 위는 했지만 약간의 찜찜함은 남는다. 여인이 훌쩍이면서 도 ‘공유물 분할의 소’, 경매절차 등의 말들은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하던 모습이 머리를 스쳐서다. 아뿔싸! 내가 또 삽질을 결국, 법률상담에서 심리상담, 그러다 인생 상담까지 해 주었으니 나를 좋은 법무사로 기억은 하겠지 하며 여인이 놓고 간 판결문과 가족관계증명서 등 복사본을 훑어보니 뭔가 이상했다. 자녀란에 19세 된 자녀의 이름이 올라온 것 은 당연하지만, 배우자란에 판결문과 다른 사람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이미 재혼을 했다는 얘기 아닌가. 주 민등록등본 복사본을 찾아보니 세대주인 여인의 세대원으 로 지금의 남편이 올라와 있는데 전입일이 전 남편과 이혼 이 확정될 무렵의 일자로 나와 있다. 도대체 뭐야?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서러운 넋두리 하소연을 할 때 여 인 혼자 자녀 키우며 힘겹게 살았던 외로움 때문인 줄 알고 더 친절하고 진지하게 설명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던 거야? 여인의 목적은 공동명의로 된 집을 전 남편 도움 없이 처분 하는 절차만 알아내려던 것뿐이었을까. 아뿔싸! 내가 또, 삽질을 한 거구나! 49 법무사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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