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8월호

들이고 부동산업자에게 입주권을 팔고 난 이후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다시 입주권을 되찾고 싶은 딸은 부동 산업자에게 몸을 바치고 입주권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 오지만 아버지 김불이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그 가족에 있어 삶의 터전은 나무를 지탱하던 뿌리였 던 것이다. 필자는 숨이 차오르고 눈물이 차올라 끝까지 읽지 못했다. 이윽고 사회현상에서 법이 차지하는 비중 을 생각해 보고, 법의 사회적 의미를 생각하며 서면을 작 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한국사회가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도 돌아보았다. 예컨대, 과거 개인의 역량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 하던 시대에는 유전적 요인이나 사회적 신분을 통해 연 역적으로 개인의 역량을 평가했던 것에 일견 합리성이 있다고 보았다(귀속주의).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인권의 식이 고양되면서 개인의 역량은 사회적 신분이나 배경 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그 개인의 능력에 따라 평가되어 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상에 따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있었다(능력주의). 그러나 개인 간의 능력차는 필연적인 것이어서 능력 에 따른 대우는 인간성을 훼손하고 야만의 정글로 회귀 하는 결과를 초래해, 이를 묵인할 수 없었던 집단이성은 함께 사는 사회의 연대를 통해 인간의 동등한 존엄을 구 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가미하게 된 것이다(평등주의). 우리 법학은 역사적으로 문명사회 발전에 지대한 공 헌을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나, 이 사건을 마주하고 그 오만함에 무거운 침묵을 명해야 했다. 법이 사회의 토 대가 되어 그 구성원의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축적된 경 험을 제공함으로써 사회과학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였 으나, 공원 잔디 위에 길이 나는 것과 같은 관습적 사회 현상은 아직도 법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생리현상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법학의 사명인 양 그들을 미개하다고 하 고, 위법하다고 하며 법을 위한 사회를 지향해 온 것일지 도 모른다. 고대 법학자들이 입법자의 무절대성과 실정법의 폭력 성을 지적하며 자연법 이론으로 반성적 고려를 삼은 것 역시 절대자의 피안으로 인간의 주체성을 전가한 것 말 고는 사회학적 법학에 대한 성찰의 일환이었다고도 선 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법학적 인문학 필자는 이 사건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호소하기로 마 음먹었다. 울산지방법원 2018가단9714 건물인도 사건 에 2019.1.29. 제출한 답변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답 변 서 울산지방법원 2018가단9714 건물인도 피고는 2008.2.5. 소유자 오OO의 배우자 이OO과 주택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울산 O구 OO길 5, 207호(OO 동, OO사택)’에 전입하여 장애인인 딸 김OO와 함께 살았습니다. 이후 사택건물이 대부분 비어있었기 때문에 피고는 임대인으로부터 사용승낙을 받아 208호에 딸 김OO의 간호 를 위한 거처를 마련하고, 대한적십자사의 후원으로 내부수리를 하고(도배, 장판, 문틀 및 문짝 교체, 씽크대 교체, 욕실 수리 등) 위생적인 환경에서 딸 병간호를 해왔습니다. 65 법무사 2019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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