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법률문화연구소장 이형구 법무사 우리 사회에 사랑의 나무, ‘생활법률문화의 꿈’을 심고 싶습니다 글·취재 / 조춘기 법무사(경남회)·본지 편집위원 법원서 쌓은 지식, 사회에 환원 내 코가 석 자라는 말이 있다. 딱히 뭐라 말 할 수는 없어도 늘 바쁘고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자천타천 화이트칼라에 속하는 인텔리겐 치아로서의 우리 법무사에게도 비록 몇몇 예 외는 있겠지만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다. 그러니 다른 데 신경을 쓸 여지 도 여력도 없다. 그런데도 내 코가 석 자가 아니라 설사 열 석 자쯤 된다고 하더라도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회에 희망을 심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법무부로부터 2014년 7월 14일 설립인 가를 받은 (사)생활법률문화연구소의 소장 이형구 법무사다. 생활법률문화연구소에는 상담학 박사, 행 정사, 교육사, 의료교육상담사 등의 직원과 의사, 한의사, 변호사, 법무 사 등 190여 명의 위촉직 위원, 시·소설·시조·수필·희곡 등 문학 분과 부 문, 가수·무용·연극·사진 등 350명의 문화분과위원 등 500여 명이 무 보수 봉사직으로 일하고 있다. 게다가 「전라매일신문」, 사회적기업협의회, 지방법무사회, (재)여성 교육문화센터, 여성새로일하기센터 등 20여 개에 달하는 전북 소재 기 관단체와 MOU를 체결하여 내외곽으로 탄탄한 조직을 겸비하고 있다. 이 정도 단체의 장이라면 아마도 국회 법사위원쯤을 겸임하는 변호 사이거나 상당한 재력가일 거라는 즉물적이고 자기비하적 예단을 한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법무사로서 마당발 같은 인맥을 과시하며 동분서주하는 그는 어째서 이런 수고를 자청한 것일까. 순창 산골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 학을 포기하고 18세 때 공군에 자원입대해 5년 9개월의 복무기간을 마 치고 전역, 제대 후 공부를 다시 하기로 결심하고 맨손으로 상경, 독서실 청소, 신문배달 등 주경야독하며 대입검정고시까지 패스했으나 부득이 한 집안사정으로 대학진학을 포기, 공무원시험을 거쳐 바로 이듬해인 1984년 법원공무원이 된다. 52 법무사 시시각각 + 법무사가 달린다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