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법무사 11월호

행각승과 구걸승 김영석 본지 편집위원 편 집 위 원 회 레 터 번화한 거리에서 탁발승이 불전함을 앞에 놓고 청아하게 목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운동모자를 쓴 젊은 사람 한 명이 탁발승에게 다가와 묻습니다. “스님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눈을 지그시 뜬 탁발승이 대답합니다. “행각으로 수행하는 중이지요!” 젊은 사람이 퉁명스레 “수행은 무슨 수행이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중이구먼….” 탁발승이 화가 나서 젊은이의 머리를 목탁으로 내리치고 불전함을 들고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불시에 머리통을 얻어맞은 젊은이가 화가 나서 파출소에 가서 탈박승을 잡아달라고 하소연 합니다. 경찰관들은 CCTV를 확인하여 조사하겠으니 맞은 머리 부위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젊은 사람이 모자를 벗자 탁발승과 똑같은 까까머리가 나와서 경찰이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자기는 OO종 승려로 “수행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젊은이의 입에서 술 냄새가 너무 심해 사건 접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찰관은 “수행하는 중”과 “구걸하는 중” 누구를 피해자로 봐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편집의 일이 여간 예사롭지 않습니다. 문단 한 줄의 심사에도 편집위원끼리 격렬하게 토의하고 질의하며 『법무사』지의 홍보와 소통방향을 놓고 탈탈 까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민한 곳인 줄도 모르고 깊은 고민 없이 편집위원에 편승한 내 꼬락서니는 마치 괴나리봇짐 달랑 메고 무작정 상경한 어리바리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자존감이 상하기도 합니다. 하나 이제 어쩌겠습니까! 순진했든 무모했든 이미 편집위원회란 배에 동승하였으니 키를 잡든 돛을 잡든 역할을 하며 제가 살아온 결대로 품위를 잃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 비록 부평초로 살아온 촌부이지만 그래도 수불석권(手不釋卷)으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으니 촉을 높여 논쟁에 한 번쯤 끼어들기도 하고, 사고의 틀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정원수를 가위로 전지(剪枝)하듯, 들숨 날숨 호흡 가다듬겠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고운야학(孤雲野鶴)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98 편집위원회 레터 +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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