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7월호

위탁가정에서 자란 ‘마리’ 는 마트에서 일하며 막 독립 을 시작한 18살 소녀다. 어느 날 새벽, 마리는 집에 서 잠을 자던 중 침입한 낯선 남자에게 수차례 강간을 당 한다. 다음 날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을 진술하는데, 반복되는 질문과 진술에 일관성 있는 대 답을 하지 못해 경찰의 의심을 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 럼 일상에 복귀해 주변인들의 의심까지 사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마리의 위탁 부모들도 마리가 평소 관심받 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진 술하면서 경찰은 결국 마리를 허위신고 혐의로 기소하고, 변 호사를 고용할 여력이 없는 마 리는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형 을 받는다. 한편, 콜로라도주 경찰서의 ‘듀발’ 형사는 가택침입 강간 사건을 맡게 되면서 이를 연 쇄성폭행 사건으로 간주하고, 같은 주 ‘라스무센’ 형사와 용 의자를 찾기 위해 수년간 미 제로 남아 있었던 성폭행 사 건의 공통점을 찾아다니게 되 는데… Synopsis 사건이다. 드라마는 강간사건의 피해자인 주인공 마리에게 ‘피해자다운 모습’을 요 구하는 주변인들이 그녀의 다소 침착함과 의연함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며 본격 적으로 전개된다. 자신의 피해사실을 진술하는 마리는 벌벌 떨지도, 눈물을 쏟지 도 않는다. 그저 어제 본 TV프로그램을 이야기하듯 침착한 태도를 보인다. 용의자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리의 진술이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자 경 찰들은 점점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이 없던 마리는 허위신고 혐의를 인정하고, 동네를 떠나 지도 못한 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아간다. 피해자가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 그러나 비슷하게 반복되는 성폭행사건을 연쇄성폭행사건이라 생각하며 뒤쫓는 콜로라도주 여성 형사들은 피해자가 아닌 범인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한 명의 범인 이 저지른 것 같은 동일한 패턴과 증거인멸 방법들을 수사하면서 피해자들의 조 치와 결정에 대해 안심을 시켜 준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말을 믿고 존중하며 사건을 쫓고, 그동안 해결되지 않은 수 많은 성폭행 사건들을 다시 조명한다. 두 여성 형사들은 매사 침착하다. 성폭력 피 해자를 대면할 때도, 서로가 업무적으로 갈등이 생길 때도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 좀 더 일반적이라는 이유로 피해 관련 자료들이 잘 검토되지 않는 등 소홀히 대해질 때, 그래서 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없다고 생각 했을 때 그들은 최고조의 감정을 드러낸다. 절도나 강도 피해자에게는 거짓말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유독 성 범죄 피해자에게만 거짓말을 의심하는 것은 진실을 철저히 외면하는 방식이다. 여 성을 상대로 한 폭력범죄가 더 많은 것을 알지만 여성 피해자들의 말을 쉽게 믿 어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다. 험악한 세상인 걸 알지만 어떻게 험악한지는 무시해 버리는 셈이다. 때문에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그냥 그렇다고 믿는 것뿐이다. 뭔가 어긋난 것 같고,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믿어야 한다. 마리가 경찰들에게 보 여준 것은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범인을 향한 침착한 분노였으며, 그녀 스 스로 누구 앞에서 울면서 호소하지 않아도 자신의 상태와 진실을 전할 수 있는 강 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굉장히 사실적이기에 불쾌할 수도 있고, 화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가 시청자의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세상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릴 수 있다. 언젠가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 다면 분노해야만 하고, 그 분노를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목소리로 바꿔야 한다. 87 법무사 202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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