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법무사 10월호

차분하고 조용한 말씨의 김 법무사에게서 현모양처 어머님과 옛 선 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시골에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은 제사 때 사용할 지방을 쓰지 못해 글 좀 얻으러 왔다며 종이를 들고 찾아왔 지요.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는 제가 지방을 써 주곤 했는데 지금 생 각하니 그분들이 속으로 ‘이놈, 참 대단하구나’라고 했을 거 같네요. (웃 음)” 김 법무사는 1976년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 작하였는데 그 후에도 서예에 대한 생각이 한 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7년 대구 계명대학교에 서 예과가 생기면서 원광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족질 김양동 교수가 부임해 왔습니다. 그때 김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해 대구지방법원 서 예동호회를 만들었지요. 동호회는 지금까지 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나름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당시 일 년 반 정도 열심히 서예공부를 했 는데 포항지원으로 전출되면서 또다시 오랫 동안 혼자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 다 주말을 이용해 남계 송정택 선생의 ‘비움서 예포럼’에서 남계 선생님한테 글씨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후로 주말이면 대구로 가서 포럼에 다녔 는데, 2017년에 포항에 지진이 났잖아요. 이 난리가 내게는 무슨 인연이었는지 당시 숙소 가 엉망이 되고 지진이 겁도 나고 해서 대구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매일 남계 선생 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매일 포럼에 다니고 있습니다. (웃음)” 하늘이 지진까지 일으켜서 서예의 길로 이 끌었다 하면 얼굴에 먹물을 뒤집어쓸 일이지 만, 배움을 향한 김 법무사의 지극정성은 하 늘도 움직였나 보다. 인본주의자 퇴계와 ‘의’를 강조한 남명 ‘서예’는 중국에서는 ‘서법’, 일본에서는 ‘서 도’라고 불린다. 예, 법, 도가 서로 말은 다르지 만 추구하는 목표는 같고, 결코 다른 곳을 향 하지 않는다. 붓을 잡을 때는 스스로를 속이 55 법무사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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