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않고 진실되고 겸허한 마음이 앞서야 한다 고 김 법무사는 강조한다. 붓이 먹물을 머금으면 가늘고 부드러운 털 이 굳세어진다. 가지런하면서도 끝이 둥글게 되고 날카로워진다. 이른바 붓의 네 가지 덕이 라고 한다. 김 법무사는 어릴 때 어머님이 들려주신 말 씀의 깊은 뜻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태어났으므로 배움 에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다. 빠르 다 하여 자만하면 발전이 없게 되고, 느리다 하여 포기해 버리면 미래가 없는 것이다.’ 지 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라서 가벼이 흘려 보내기 쉽지만, 진리는 멀리 어려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있음을 옛 어른들은 가르쳐 왔습니다.” 偶來坐溪蔭(우래좌계음) 그대가 오니 계곡 그늘에 앉아 詩至一長吟(시지일장음) 일장의 시를 읊어 이르니 我炳君亦病(아병군역병) 그대의 병 또 나의 병 柰此碧山岑(내차벽산잠) 어찌 이 푸른 산과 같구나 溪鳥自相樂(계조자상락) 스스로 새들도 냇가에 어울려 놀고 溪雲本無心(계운본무심) 구름 낀 냇가 본 마음이구나 安得如二物(안득여이물) 二物(理, 氣)을 쉽게 얻으니 終年保幽襟(종년보유금) 그윽한 옷깃 終年을 보내리라. 2019년 김 법무사가 국전에 출품한 작품의 소재인 퇴계 이황의 시다. 철저한 신분사회에서도 인간성을 중시했던 그의 정신세계와 연이은 사 화에서 느낀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퇴계는 주리론에 중심을 두면서 성 리학을 집대성한 동방의 주자로 불린 대학자이다. 이율곡은 한훤당 김 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회재 이언적과 함께 퇴계를 동방5현이 라 하였다. 벼슬길에 느지막이 올랐지만 비교적 이른 오십이 안 된 나이에 관직 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인본주의자였던 퇴계는 청상 이 된 맏며느리를 개가시키고, 정신장애가 있던 부인을 끝까지 보살펴 주었으며, 심부름 온 하인들을 대문 밖까지 배웅을 했다고 한다. 김 법무사는 엄격한 형식과 예법에 앞서 인간성을 중시한 퇴계의 정 신세계를 붓으로 표현해 국전에 출품했다. 퇴계와 남명 선생의 철학에 그는 깊이 공감한다. 春山低處無芳草(춘산저처무방초) 봄 산 아래에는 향기로운 풀이 없으랴마는 只愛天王近帝居(지애천왕근제거) 천제 사는 곳과 가까운 천왕봉만 좋아라 白手歸來何物食(백수귀래하물식) 맨손으로 돌아와서 무얼 먹고 살겠냐고? 銀河十里喫猶餘(은하십리끽유여) 은하처럼 흐르는 물이 십 리인데 마시고도 남으리 김 법무사가 2020년 국전에 당당히 내걸었던 남명 조식 선생의 시 다. 천왕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두류산(지금의 지리산)을 여행한 후 쓴 것으로 추측된다. 산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한데 무 얼 먹고 살겠느냐는 질문에는 “물 마시고 살지”라고 대답하며, 평생 과 거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던 남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서삼경을 부지런히 읽어서 선비로서의 덕목을 갖추고 이를 실천하 라고 가르쳤으며, 타계 20년 후에 일어난 임진왜란에 그의 제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의병으로 출전하였다. 김면, 정인홍, 곽재우, 이대기 등 대표적인 의병장들이 모두 남명 선생의 제자들이다. ‘의(義)’를 강조한 그의 철학은 문정왕후와 그 남동생 윤원형의 폭정 56 법무사 시시각각 화제의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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