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8월호
열렸는데, 세 번의 공판 끝에 법원은 대리기사를 증인으 로 불러 신문하고 변론을 종결했다. 의뢰인은 공판정 분 위기를 좋지 않게 전해 왔다. 나는 느낌이 좋지 않아 그날 음주운전 단속이 없었 다고 주장한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탄핵하기 위해 의 뢰인의 국선변호인을 맡은 변호사에게 경찰청에 사실조 회 촉탁신청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법원이 사실조회를 받아들이고 변론재개결 정을 내린 것을 보고 반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후 재개 된 2번의 공판을 통해 나온 판결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날, 대로변에서 음주단속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 나 피해자가 경황이 없어 잘못 기억한 것일 수 있을 뿐, 피해자가 거짓증언을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의 뢰인을 벌금 50만 원에 처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민사사건 재판부도 이와 같은 형사재판의 결과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 렸다. 사건이 있은 지 1년여 만이었다. 의뢰인은 법원을 불신했다. “죄가 없어도 죄가 있다 면 있는 것이고, 죄가 있어도 죄가 없다면 없는 것이다” 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그리고 매번 직장을 빠지고 재판 받으러 다니는 일이 할 짓이 아니라며 이제는 지쳐서 대 응하고 싶지도 않다고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의뢰인에게 블랙박스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패소한 마당에 다시 꺼내기는 곤란했다. 형사사건의 국 선변호인도 의뢰인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복원해 제출하 도록 권유하지 않았고, 변호인이 성의를 다하지 않은 데 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나는 지그시 눈을 감 고 의뢰인의 불평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고가 뺨 한 대 맞은 것으로 실무를 하다 보면 소액사건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같은 근거 없는 의존적 믿음을 발견하곤 한다. 소액사건은 엄격한 증거에 의하지 않고도 법관의 직관에 따라 현명한 판결로 신속히 종결된다고 생각해 치열한 증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의뢰인도 재판부를 과신했던 것일까. 22 법으로본세상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