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법무사 8월호

뇌진탕 진단서와 입원사실확인서를 증거로 제출한 것에 대해 사건 당일은 물론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이틀간 대 리운전 일을 했을 수도 있으니 대리운전 회사에 사실조 회신청을 해서 근무일지를 제출 받아보자는 제안에 대 해서도 의뢰인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며 블랙박 스 검증 제안 때와 같은 태도를 보인 대목이 마음에 걸 렸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액사건에 대한 막연한 의존적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 나 안타까운 여운이 남았다. 실무를 하다 보면 일반인들 사이에 만연한 소액사 건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같은 근거 없는 의존적 믿음을 발견하곤 하는데, 마치 소액사건은 엄격한 증거에 의하 지 않고도 법관의 직관에 따라 현명한 판결로 신속히 종 결된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방심으로 치열한 증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의뢰인도 재판부를 과신 했던 것일까. 의뢰인의진실을믿기로했지만… 그날의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의뢰인이 진실을 알면 서도 확전을 피하기 위해 증명 활동을 자제한 것이었는 지, 그 같은 사실이 있었는데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는 공포감에 따른 것인지, 정말로 그 같은 사실이 없었는데도 증명을 포기한 것인지는 쉽게 단정할 수 있 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법원은 어떻게 증거 없이도 유죄판결을 할 수 있었는지, 교과서에 나오는 증거재판주의에 따른 형사상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증명책임의 분배에 관한 민사상 ‘법률요건 분류설’은 그 자체로 이론에 불과한 것인지, 그날의 진실을 느낌만으로 판단한 것은 수긍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쩌면 형식적인 증거재판주의에 기댄 사악한 무죄에 속지 않기 위한 경험 많은 법원의 의심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이용해 귀가할 때는 다음 날 어떻게 집에 왔는지 하나도 기억나 지 않는 블랙아웃의 공포를 경험하곤 한다. 다음 날 다 시 만난 동료들로부터 “어젯밤 내가 실수는 안 했나요?” 라고 물었을 때 피식피식 웃거나 실수한 것 없다는 말을 한숨을 쉬며 하는 경우 그 미지의 공포는 배가된다. 그리고 조각조각 드러나는 기억의 저편에서 택시기 사에게 “차는 저쪽에 주차해 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아 내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등의 행적을 기억해내고는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된다. 그만큼 사람의 의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에 우리는 늘 불안정한 일상을 위험하게 보내고 있다 는 사실과 그러한 의식이 재판의 대상으로 된 경우, 항 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만취로 인해 기 억을 하지 못한다 해도 그 취중의 의식은 본성에 기초한 순수한행적이었다는점이그나마안심이되는일이다. 나는 의뢰인이 기억하는 그날 밤의 진실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만을 놓고 보면, 누구라도 다 아 는 사실을 나 혼자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다. 혹시 내게도 확증편향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은 아닌지 말이다. •울산지방법원 2020고정140폭행 •울산지방법원 2019가소37178손해배상(기) ※ 위 글은 소송문서 작성의 일선에 계신 법무사님들의 애환과고충을알리고, 음주상태에서는법이정상적으로작동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함으로 특 정인이나특정직업을폄하할의도는없음을알립니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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