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덧없음, 구양수-김홍도이건희의 이신전심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 김남희 화가 · 『옛 그림에 기대다』 저자 그는 풍속화로 이름이 높지만, 그림의 재능은 신선 도로 알렸다. 임금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어진화사’에 세 번 참여하였다.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 유람 후 그린 그림 을 묶어 ‘그림첩’을 만들었다. 대마도에 가서 지도를 그려 오기도 했으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용주사 대웅전의 후불탱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48세의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는 행복을 누렸다. 그 러나 정조가 49세로 세상을 하직하자 실의에 빠진다. 힘 든 기간을 보낸 후 다시 붓을 잡았다. 작품은 더 성숙하고 호방해진다. 화려함보다는 사물의 참모습을 담으려 했다. 말년에는 노승(老僧)을 소재로, 홀연히 서방정토를 향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1805년 61세가 되면 잦은 병마에 시달리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다. 마음은 백 가 지의 근심으로 가득했다. 가세는 기울고 늦게 얻은 아들은 아직 어린데, 깊어 지는 병세는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가을바 람 소리가 저승사자의 부름같이 들린다. 김홍도는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구양수 (歐陽脩, 1007~1072)가 52세에 쓴 「추성부(秋聲賦)」를 읽고 자신의 처지 같아서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추 성부도」는 그렇게 완성된다. 그림과 눈을 맞출 때 슬기로운 문화생활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그림 이야기 쓸쓸한 말년, 구양수의 「추성부」를 읽고 그린 작품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는 무관 집 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서얼 출신이었기에 집안이 풍족하지 못했다. 10세 무렵 안산에서 표암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 다. 20세를 전후해 도화서 화원으로 들어갔다. 그림 실력 이 출중하여 영조와 정조의 사랑을 받았다. 조선시대 후 기 진경시대를 이끌며 풍속화를 꽃피운다.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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