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2233-4688 03 2 0 2 2 vol. 657
발행인 이남철 편집인 박철훈 편집주간 김병학 편집위원 강상수·강성구·강신기·권중화·김정준·김정호·박성익 박윤숙·윤정진·윤평식·이경록·장태헌·정진홍·최상익 편집장 임정와 발행처 대한법무사협회 발행일 2022년 3월 5일 통권 제657호 디자인·인쇄 주식회사 더블루랩 일러스트 이정윤 정기간행물 등록 1965년 5월 7일 강남, 라 00102호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651 (논현동, 법무사회관) 전화 02)511-1906~9 팩스 02)546-4362 이메일 <편집부> kabl@hanmail.net 홈페이지 www.kabl.kr 비매품 ※ 본지에 게재된 글들은 대한법무사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민 곁에 125년, 생활법률 전문가 법무사史 사법서사 명부(1950)와 명감(1964) 1935년 「조선사법서사령」의 시행으로 ‘사법서사’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1949년 한국사법서사 협회(임의단체)가 창립했다. 1954년에는 사법서사 인가제가 시행되어 비로소 사법서사의 법 적 지위가 인정되었으며, 1963년 「사법서사법」 제정으로 7.22. 법정법인인 ‘대한사법서사협회’ 가 창립되었다. 위 사료 왼쪽은 사법서사 인가제 시행 전인 1950.4.10.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사법서사 명부』 (이한규 전 협회장 기증), 오른쪽은 대한사법서사협회가 1963년 창립 후 바로 제작에 착수해 1964.4. 발간한 『사법서사 명감』. 법원행정처가 아닌 협회가 자체 발행한 최초의 명감이다. 3월 커버 스토리 03
생활법률 전문가, 법무사 개인회생·파산 민사신청 집행·공탁 각종 등기
법률분쟁 (소장 등 작성) 알고 보면 많은 일을 합니다. 상속·증여 기업법무 성년후견
Contents 법으로 본 세상 10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_ 단란주점 독신 여사장 의문사와 혼인무효소송 사건 (2017. 울산지방법원) 16 세계의 평화, 우리의 평화 _ 평화로운 공동체, 상대적 강자도 약자도 없는 곳 22 주목 이 법률 _ 노동이사제 도입 「공공기관운영법」 개정법률의 쟁점 과 향후 과제 26 법률고민상담소 _ 상속, 민사, 부동산등기 분야 30 최근 시행법령 _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일부개정(2022.2.11. 시행) 등 91 내가 만난 법무사 _ 박창규 법무사(서울남부회) 2022년 3월 vol. 657 32 16
현장활용 실무지식 50 맞춤형 최신 판례 요약 _ 2021.12.16.선고 2018다226428판결 등 54 나의 사건수임기 _ 「협동조합법」 상의 조합원 제명제도와 임원의 해임 60 신(新) 기업컨설팅 사례연구 _ 임원변경등기에 관한 컨설팅 68 행복의 심리학 _ ‘공허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의 행복 전환법 법무사 시시각각 32 이슈와 쟁점 _ 「부동산등기규칙」 개정의 의미와 본인확인제 도입 의 경과 _ 블록체인 부동산등기의 대체 가능성과 전문자격자 의 역할 42 발언과 제언 _ 「국세기본법」 인지세 납부지연가산세의 개정 논란과 과제 44 화제의 법무사 _ 18년 구력의 개인회생 전문가, 서선진 법무사 48 최근 공제사고 사례 _ 모 협동조합의 손해배상청구,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 각 판결(2020.6.25.) 등 슬기로운 문화생활 72 세대유전 2080 명곡 _ 보아 「No. 1」 74 가슴뭉클 가족영화 12선 _ 「작은 아씨들」 8·76 콧바람 하루여행 _ 서울 창덕궁과 후원 80 문화路, 쉼표 _ 쉽지 않은 숙제 동정·등록 81 협회는 지금 _ 협회 · 지방회 · 법무사 동정 86 법무사 신규등록 · 등록공고 90 편집위원회 레터 _ 새봄이 온다 44 81 74
콧바람 하루여행 창덕궁, 만첩홍매 3월이 시작되면, 두근두근 마음이 설렌다. 창덕궁 낙선재에 붉은 홍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서울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유네스코에 등재된 창덕궁은 서울에서 가장 예쁜 ‘만첩홍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p. 76에 이어) 글·사진 / 민혜경 여행작가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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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강을 건너는 데는 얼마의 노잣돈이 필요한가? 이성진 법무사(울산회) 열혈 법무사의 민생 사건부 법무사가 실제 수임한, 이 시대 민초들의 생활사건 이야기 단란주점 독신 여사장의 의문사와 혼인무효소송 사건(2017. 울산지방법원) 10
‘하데스’(명계)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세계를 흐르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 먼저 아케론강을 건너야 하는데 아케론강이 ‘비통의 강’이라 불리는 이유는 강 물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죽은 것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강에서는 ‘카론’이라는 뱃사공이 강을 건네주는 데, 뱃삯을 내지 않으면 절대로 배에 태워주지 않기 때 문에 노잣돈이 있어야 한다. 이 노잣돈은 유족이 제를 올린 돈으로 마련하는데, 유산 다툼을 하거나 망자의 죽음을 부인하는 경우 노잣돈은 기대할 수 없다. 노잣돈이 없는 망인은 기약 없이 강가를 서성이는 데, 카론이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지만 말고 잠깐 노를 잡고 있으라고 소리치면 화들짝 놀라 덥석 노를 잡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망자를 속여 노를 잡게 할 때까지 무 거운 노를 끝없이 저어야 하는 고역을 견뎌야만 한다. 카론이 건네주는 아케론강을 건너면 ‘시름의 강’ 인 코퀴토스강과 ‘불의 강’인 플레게톤강을 건너며 이 승에서의 과업에 대한 후회와 탄식, 그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죄업을 정화한다. 이어서 이승과 저승의 마지막 경계를 벗어나는 ‘증오의 강’인 스틱스강을 건너 ‘망각의 강’으로 불리는 레테강에 이르러 강물을 한 모금 마심으 로써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거대한 벌판이 펼쳐지는데, 오른쪽으로 가 면 극락들판 엘리시온, 왼쪽으로 가면 무한지옥 타르타 로스가 나온다. 동거남 차에서 의식불명 후, 몰래 이뤄진 혼인신고 그녀는 도심 번화가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던 독 신의 여사장이었다. 대부분 그렇듯 그녀에겐 업소를 관 리해 주는 연하의 동거남이 있었고, 그녀와 여종업원들 은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2017.7.1. 뇌교 압박, 뇌부종, 뇌출혈 등의 사인으로 숨을 거뒀는데, 병원 응 급실로 이송된 지 6일 만이었다. 그녀가 응급실로 이송되기 전날, 그러니까 2017. 6.25. 밤 9시경 그녀의 언니인 의뢰인은 그녀의 연하 동 거남으로부터 “사장님 거기 있느냐”는 확인 전화를 받 았는데, 예감이 좋지 않아 “같이 있는데, 전화 받기 싫단 다”고 둘러대고, 그녀에게 전화를 해 봤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최근 새로운 남자친구와의 교제를 눈 치챈 동거남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는데, 다 음 날인 2017.6.26. 새벽 3시경, 일을 마친 그녀는 동거남 이 운전하는 차에 동승해서 여종업원 2명을 집까지 태 워주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리고 2017.6.28. 그녀와 동거남의 혼인신고가 되 어 있었고, 그녀가 사망함으로써 동거남은 배우자로서 1 순위 상속인이 되어 그녀의 모든 재산을 단독상속 받게 되었다. 이 같은 사정은 장례를 위해 의뢰인이 그녀의 예 금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의뢰인은 동거남을 찾아가 “날강도 같은 놈”이라고 실컷 욕을 퍼붓고선 구청을 찾아가 담당 공무원에게도 “어떻게 사람의 생사도 확인 안 하고 혼인신고를 받아 주느냐”며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공익근무자들에게 들 려 나오고서야 내 앞에서 펑펑 울음을 쏟았다. 독신의 단란주점 여사장인 그녀는 2017.6.26. 새벽 3시경, 일을 마친 후 동거남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리고 6.28. 동거남이 혼인신고를 했고, 7.1. 그녀가 사망함으로써 배우자로 1순위 상속인이 된 동거남이 모든 재산을 단독상속 받게 되었다. 이 같은 사정은 그녀의 언니인 의뢰인이 장례를 위해 그녀의 예금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11 열혈법무사의 민생사건부 법으로 본 세상
의뢰인은 그녀가 차 안에서 동거남으로부터 폭행 을 당한 것으로 확신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동거남이 그 녀가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동안 몰래 혼 인신고를 한 것을 두고, 재산을 노린 짓으로만 알고 혼 인무효소송 및 가처분신청과 사문서위조 등 형사고발을 의뢰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애정을 방패 삼아 죄적을 인멸할 목적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추가로 형사 고소를 의뢰해 왔다. 살해 의심 동거남 상대로 혼인무효소송, 사전처분, 형사고소 그녀의 업소에서 마지막 전표를 끊은 시각이 03:00, 이후 도심에서 한 명의 여종업원을 내려주고, 다 른 한 명을 내려준 곳이 그곳으로부터 12km 거리인데, 그 여종업원의 진술에 의하면 그때가 03:25경이라고 하 므로 응급실에 도착한 04:03까지 차 안에 단둘이 남게 된 35분간의 행적에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 단서 가 될 블랙박스도 SD카드가 제거되어 있었다는 점이 더 욱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내연남의 해명으로는 도심을 벗어난 외곽에 여종 업원을 내려주고 돌아오던 중, 로드킬 된 고양이와 검은 개를 보고 두 번 급정거를 했다고 했는데, 이는 묻지도 않은 답변이고, 설령 그로 인해 그녀에게 뇌출혈이 왔 다면 평소 고혈압의 지병이 있던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던 그로서는 언니인 의뢰인에게 알리거나 119에 신 고하여 응급조치를 받도록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 일 것인데도, 내연남이 외곽지역이라고 하더라도 가까운 병·의원을 두고 30여 분간 차량 운행을 멈추지 않은 채 도심의 종합병원까지 주행을 계속한 정황은 쇼크로 코 마 상태에 빠진 그녀의 의식이 온전히 없어질 때까지 기 다린 것이라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나는 의뢰인에게 그녀가 최근 교제했다는 남자친 구로부터 진술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연남이 한 혼인 신고가 그녀와의 사전 합의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애 당초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그 진술서에는 서로 사랑하 는 사이로서 그녀와 장래를 약속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2017.6.28. 내연남이 한 혼인신고는 긴급 뇌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환자에게 혼 인신고 의사는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혼인의 합 의는 혼인신고를 할 당시에도 존재하여야 한다는 대법 원 1996.6.28.선고 94므1089판결을 근거로 2017.7.5. 울 산가정법원 2017드단24045 혼인무효의 소를 제기하고, 그녀 명의로 된 부동산들에 대해 내연남이 상속등기를 하지 못하도록 울산가정법원 2017즈기1105 사전처분을 신청했다. 혼인무효의 판결이 확정되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이 있기까지는 여전히 내연남이 그녀의 배우자로서 법정 상속인이 되므로 언제라도 그녀 명의의 부동산을 처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처분은 채무자와 부동산 소유자가 일치해야만 보전명령의 등기촉탁이 가능하므 로, 가처분을 받기 위해선 내연남 명의로 대위상속등기 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게 된다. 12
이 같은 절차는 내연남이 그녀의 배우자가 아니라 고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한 의뢰인의 입장에서 스스로 그녀의 배우자가 내연남이라고 자인하는 결과가 되므로 법 감정에 맞지 않아 택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가사사건의 특칙으로 일정한 금지행위를 명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 우 1,000만 원의 과태료에 처할 것을 경고하는 사전처 분을 받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만, 생명보험은 보험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보 험사가 지정수익자에게 약정보험금을 지급하기로 하 는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서 명의자를 일치시키는 따 위가 없으므로, 그녀의 사망보험금을 내연남이 상속인 자격으로 수령해 가지 못하도록 2017.7.6. 울산가정법원 2017즈단1136 채권처분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생존 확인 없이 혼인신고 수리, 공무원 책임은 없다? 사전처분은 2017.7.10., 채권처분금지가처분은 2017.7.12. 인용되어, 그녀의 모든 재산은 동결되었다. 이 와 함께 의뢰인은 구청의 가족관계등록 담당 공무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는 진정도 요구했는데, 진위파악을 해 본 결과 담당 공무원은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 률」 제23조제2항을 근거로 들었다. 신고로 인하여 효력이 발생하는 등록사건에 관하 여 신고사건 본인이 출석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불출석 당사자의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여 야 하고, 신분증이나 인감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은 때는 신고를 수리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담당 공무원은 내연남이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가 지고 왔기 때문에 신고를 받아 주었다고 하는데, 엄격한 혼인신고 의사의 확인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분증 확인 을, 거꾸로 신분증만 제시하면 그 입수 경위는 불문하고 혼인신고를 받아 준다는 완화된 혼인신고 의사의 추정으 로 둔갑시킨 점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행정기관의 소극적 태도는 대법원이 관장 하는 등록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기관 위임사무라 는 점과 「민법」 제813조에서는 혼인적령, 동의, 근친혼, 중혼, 증인2인 연서만을 심사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판 례는 이를 형식적으로 심사하는 것만으로 족하고, 신고 사항의 실체적 진실과의 부합 여부를 탐지하여 심사하 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대법원 1987.9.22.선고 87다카 1164판결)하여 더욱 부실 신고의 폐해를 낳고 있다. 「가족관계등록예규」에서도 “당사자 일방 또는 동 의권자의 서명날인이 빠졌거나 권한 없이 작성된 혼인신 고서가 수리된 때에도 당사자의 혼인신고 의사 및 동의 가 있었음이 인정되면 혼인은 유효하게 성립된다(제149 호)”고 하여 추후 법원에서 실질적 의사를 가리면 될 일 이고, 혼인신고를 받는 행정기관으로 하여금 사실 판단 의 과중한 업무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혼인은 생존한 사람들 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 이상, 형식적 심사권의 대상에는 그 혼인 의 당사자가 생존하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하는 대법원 1991.8.13.자 91스6결정 취지에 담당 공무원은 내연남이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신고를 받아 주었다고 하는데, 엄격한 혼인신고 의사의 확인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신분증 확인을, 신분증만 제시하면 그 입수 경위는 불문하고 혼인신고를 받아 준다는 완화된 혼인신고 의사의 추정으로 둔갑시킨 점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3 열혈법무사의 민생사건부 법으로 본 세상
따라 사기(死期)가 임박한 환자의 신고 의사 확인 소홀 과 증인 2인의 연서가 같은 필기도구, 같은 필체였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도 있었다는 점을 들어 부실 수리를 지 적했으나, 관할 행정기관은 적법한 수리라고 보아 시정 조치 할 대상이 아님을 밝혀왔다. 이와 같은 행정기관의 과장된 형식적 심사의 면책 구실은 의뢰인은 격분케 했다. 동거남의 유기치사죄 무혐의, 공전자기록 불실기재죄로만 기소 혼인신고를 수리한 담당 공무원이 면책되자 의뢰 인은 공세적으로 돌변했다. 이에 따라 혼인무효소송과 함께 같은 날 검찰청에 접수한 내연남에 대한 사문서 위 조 및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죄의 고발에 이어, 의뢰인 으로 하여금 법원에 송부된 혼인신고서를 사본해 오도 록 해서 2017.8.4. 혼인신고서에 증인으로 연서한 내연남 의 아버지와 동생에 대하여도 종범으로 고발하고, 내연 남에 대한 폭행치사 또는 유기치사에 대하여 조사해 달 라는 진정서를 함께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추정만으로 고소할 경우, 무고의 부담이 있었기에 진정서의 형태로 제출한 것인데, 1주일쯤 지나 검찰수사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내연남의 범죄혐의가 인정되므로 처벌의사를 분명 히 해서 고소장 형태로 다시 제출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유기치사는 2017.8.8. 고소사건으로 재 접수되었고, 이 사건은 경찰에 수사지휘되었는데 안타 깝게도 1년여의 수사 끝에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의뢰인 은 담당 경찰관에게 블랙박스 SD카드 확보와 동선 상의 CCTV 확보를 강력히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며, 청문감사실에 담당 경찰관을 진정하는 등 불복했지 만 소득은 없었다. 결국 내연남이 기소된 혐의는 의식불명 상태인 그 녀의 주민등록증과 도장으로 혼인신고서를 허위로 작성 하고, 이를 구청 담당 공무원에게 허위로 신고를 함으로 써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로 공전자기록인 가 족관계등록정보시스템에 부실의 사실을 기록하게 했다 는 피의사실이었다. “혼인신고는 허위” 형사법원 판결 후 혼인무효소송도 승소 내연남이 기소되어 형사공판이 열리게 되자 내연 남의 형사사건 변호인이 민사사건인 혼인무효 사건까지 수임하여 사실혼이 존재하였으므로 혼인신고에 대한 망 인의 추정적 승낙이 존재한다며 무죄 주장과 함께 혼인 신고의 적법을 항변했고, 형사 사건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 를 이어가면서 혼인무효 사건을 공전시켰다. 그러나 형사법원은 내연남의 혼인신고가 허위라고 판단했고, 항소법원도 원심을 유지함으로써 형사판결이 확정되기에 이르렀고, 2년여간 형사판결 추이를 지켜보던 혼인무효사건도 2019.3.20.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했다. 의뢰인은 내연남의 미필적 살인이나 폭행치사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황에서 유기치사도 인정되지 않은 점은 그녀의 원한을 풀어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혼인무효사건의 승소로 이제야 그녀가 구천을 떠돌지 않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감정을 추슬렀다. 자식이 없던 그녀가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재산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점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14
이후 혼인무효 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어 그녀의 가 족관계등록부상 혼인기록을 말소한 것은 물론, 가족관 계등록부 자체를 재작성해서 무효를 원인으로 주말된 내연남과의 혼인 이력 자체가 현출되지 않도록 했다. 「가족관계등록예규」 제289-7호 ‘가족관계등록부 의 재작성에 관한 사무처리지침’ 제3조제3항에서 혼인 무효가 한쪽 당사자나 제3자의 범죄행위를 원인으로 하 여 이루어진 경우에는 형사판결문 또는 검사의 기소유 예처분 결정문 등을 첨부하여 이해관계인에 의한 가족 관계등록부 재작성 신청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의뢰인은 내연남에 대하여 미필적 살인이나 폭행치 사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정황에서 유기치사도 인정 되지 않은 점은 그녀의 원한을 풀어 주지 못했다는 아쉬 움이 남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야 그녀가 구천을 떠돌 지 않게 되었다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감정을 추슬렀다. 자식이 없던 그녀가 이승에 남긴 것이라곤 한 해만 더 일하고 은퇴하겠다며 모아둔 재산이었는데, 오히려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재산 때문에 희생되었다 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승의 강을 건널만 한 노잣돈 한 닢만 있으면 족할 것을 말이다. 에필로그 사전처분을 받아 놓았던 부동산 중 하나가 내연남 명의로 상속등기가 되어 경매로 팔린 사실을 뒤늦게 안 의뢰인이 화들짝 놀라 내연남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내 게 해명을 요구해왔다. 등기부를 살펴보니 한창 소송 중 이던 때 그 부동산에 설정되어 있던 근저당권이 실행된 것이었다. 의뢰인은 그녀의 재산을 동결만 해놓았지 관 리까지 할 정신은 없었던 듯하다. 대출 원리금이 연체되자 금융기관은 수차 상환독 촉을 했을 것이고, 등기부상 소유자이던 그녀는 이미 사 망한 상태였고, 외관상 상속인으로 되어 있는 내연남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에서 우편물이 송달되지 않자 금 융기관이 대위상속등기를 거쳐 임의경매를 부쳤던 것이 었다. 당시에는 혼인무효 판결이 나기 전 상황이라 당연 히 그녀의 상속인은 내연남이었을 것이므로 내연남 명 의로 상속등기가 된 것이고, 그 절차를 거쳐 이어진 경 매는 상속인의 채무로 인한 것이 아니라 망자의 채무로 인한 것이었으니 제3자에게 매각된 이상 내연남 명의의 중간등기 기록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의뢰인은 별도의 절차를 거쳐 법원으로부터 내연남 에게 배당된 매각잉여금을 모두 양도 받아 수령했다. •울산지방법원 2017드단24045 혼인무효 •울산가정법원 2017즈기1105 사전처분 ※ 이 글은 이혼절치에 비해 심사요건이 완화되어 있는 혼인 신고의 제도적 개선점을 지적한 것으로서, 특정단체나 특정인 에 대한 비방이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15 열혈법무사의 민생사건부 법으로 본 세상
16 세계의 평화 우리의 평화 평화학 1호 박사가 쓰는 평화 이야기 평화로운 공동체, 상대적 강자도 약자도 없는 곳 정주진 평화갈등연구소장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아파트 계층 사회, 구분 짓기가 가져온 폭력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의 의도적 구분과 그로 인한 두 아파트 사이의 물리적 단절, 그리고 주민들 사이 의 갈등과 차별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얘기다. 그 럼에도 임대아파트를 따로 구분하는 아파트 건축은 계 속됐다. 마침내 지난 1월 23일, 서울시는 앞으로는 일반아 파트와 임대아파트 가구가 구분되지 않도록 ‘동·호수 공 개추첨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공공주택에 대 한 차별적 요소와 부정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미 구분된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계속 이동과 선택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마음고생을 감 내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주 민들 사이에는 마음의 벽이 높이 쌓여 있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일부 일반아파트 주민들의 노골적인 무 시에서 비롯된 주민들 사이 충돌도 종종 보도된다. 철제 담장을 설치하고 임대아파트 사람들의 통행 을 막는 일반아파트 주민들,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 없으니 학교를 따로 만들어 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하는 일반아파트 학부모들, 일반아파트 주 민들이 설치한 출입문과 도어락에 막혀 위험하게 높은 담장을 넘거나 15분을 돌아 학교에 가는 아이들, 놀이터 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발견하곤 ‘도둑’이라고 말한 일반아파트 거주 주민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 들이 생각보다 많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싫어할 수 있고 누군가를 싫어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기 집 주 변으로 다니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싫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고 공격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혼자 속으로 갖는 생각과 감정은 자신의 것이지만, 밖으로 표출하는 말과 행동은 사회적인 것으로 타인을 해치는 것이라면 사회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자기만의 영역을 표시하듯 타인의 존재와 이동을 제한하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말 과 행동은 혐오의 표출이고 폭력이다. 지난 1월 12일, 한 방송의 저녁 뉴스에서는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도 일반 분양 아파트(이하 ‘일반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이하 ‘임대아파트’)가 눈에 띄게 구분돼있는 사례들을 보도했다. 한 아파트 단지는 임대아파트 한 개 동만 다른 14개의 일반아파트 동들과 뚝 떨어져 있었다. 출입구와 지하 주차장도 따로였다. 일반아파트에 있는 목욕탕, 헬스클럽, 도서실도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거절당했다는 주민의 인터뷰도 있었다. 다른 아파트 단지의 경우도 비슷했다. 벽과 계단을 기준으로 아래쪽엔 임대아파트 두 개 동이, 위쪽엔 일반아파트 15개 동이 있었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관리사무소가 일반아파트 쪽에 있어서 불편하고, 아파트 길찾기 안내도에도 일반아파트 출입구만 표시되어 있어 배달하는 사람에게 항상 다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놀이터 시설도 일반아파트 것이 훨씬 좋단다. 한 주민은 임대아파트라는 걸 꼭 알려야 하는 것처럼 두 개 동만 뚝 떨어뜨려 놓은 게 차별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가) 임대아파트에 사니까 그런가 보다 해야지 뭐”라고 말했다. 법으로 본 세상 17 세계의 평화 우리의 평화
일부 일반아파트 주민들의 행동을 폭력으로 규정 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또는 폭력인 걸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서 폭력이 아닌 건 아니다. 폭력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억압하거나 압박하고, 타인에게 무 언가를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폭력은 항상 피해를 동반한다. 위의 사례에서처럼 자기 편의를 위해, 그리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임대아파 트 주민들의 이동 자유를 제한하고, 여러 방식으로 압력 을 가하고, 언어를 통해 신체적·심리적 해를 가하는 것 은 명백하게 폭력이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차별이나 인권 침해로 얘기될 수 있겠지만 폭력의 기준으로 판단 하는 게 더 적절하다. 익숙해진 힘의 관계와 악용, 아이들에게도 일상화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자 신이 상대보다 우월하고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다. 일부 일반아파트 주민들은 일반아파트가 임대아파 트보다 상위 주택이고, 그러므로 거기 사는 자신들이 임 대아파트 거주자들보다 상류층이고 힘이 있다고 생각한 다. 그 힘에 의존해 부당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폭력적 행 동을 당연한 요구와 행동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힘의 원천으로 여긴다. 교육 과 부의 수준, 가족, 인맥, 정보, 민족적 배경, 심지어 사 는 지역과 외모 등을 자신과 타인 사이 관계를 결정짓는 힘으로 생각한다. 사실 그런 점들은 한 사람을 다른 사 람과 구분하는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것들을 한 사람의 특징이 아 니라 힘의 관계를 결정짓고 그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힘으로 인식한다. 그것들을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기준으로 삼아서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를 인식한다. 자신이 상대적 강자라고 판단되면 자기 이익 을 위해 힘을 이용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18
힘의 관계와 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재가 강 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내재적 판단을 넘어 실질적으로 힘을 악용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 게 발생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듣는 많은 사례는 힘의 악용을 제재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기업이나 업주의 갑질, 직장 내 따돌림과 괴롭힘, 빈곤층에 대한 무시, 직업에 대한 차별, 난민과 이주노동 자에 대한 혐오 등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데 그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제재는 아주 헐렁하다. 오히려 힘 있 는 개인이나 집단의 눈치를 보고 강자의 심기를 살피느 라 약자의 피해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힘의 관계에 익숙한 우리는 그런 일을 당연하고 일 상적인 일로 취급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로 비겁함을 ‘처세술’로 포장하기도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 사이에서는 얼굴과 몸매, 학업 능 력, 사회성 등에 대한 평가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놀이 로 가장된 놀림, 혐오 발언, 욕 등이 ‘약자’로 찍힌 아이 들에게 쏟아진다. 아이들 또한 힘의 관계를 확인하고 악 용하는 데 익숙하다. 모두가 상대적 강자이자 약자 우리 사회에 자신이 가진 힘을 내세우고 힘에 의존 해 관계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로는 두 가지를 생 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그런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와 노인 공경 등 우리는 위계의 설정과 그에 따 른 상명하복의 문화에 익숙하다. 그런 문화의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지나친 강조로 불이익을 당하고, 부당하게 공격에 노출되는 사람에 대 한 관심은 부족하다. 직장에서, 또는 업무로 만난 사이에 서조차 가부장적 문화와 나이에 따른 위계가 강조되는 건 21세기에 무척 부자연스럽고, 어떤 사람에게는 견디 기 힘든 일인데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힘의 관계를 설정하고 힘에 의존하는 것이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지고, 사회적으 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힘의 악용이 곧 폭 력이 되고 피해를 낳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 들이 많다. 만나자마자 나이를 확인하고, 출신 지역과 교 육 배경을 묻고, 선·후배 관계를 정리하는 건 하찮은 일 처럼 보이지만 힘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데 익숙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힘의 관계를 강조하고 힘에 의존하는 문화와 사회 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제외하고 누구도 안전하 지 않다. 힘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강자나 약자가 없다. 누구나 다른 누군가보다 힘이 있거나 힘이 없다. 자기 주변의 어떤 사람보다 교육 수준이 높아도 부 의 수준은 낮을 수 있고, 인맥이 넓어도 고급 정보는 없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힘으로 인식하고 이용하는 사이에 서는 서로 자신의 강한 점과 타인의 약한 점을 강조하는 경쟁적이고 상호 폭력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힘의 관계에 의존하고 힘의 악용을 통해 생기는 폭 력을 지적하는 이유는, 단지 피해에 주목하기 때문만은 힘의 관계와 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재가 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내재적 판단을 넘어 실질적으로 힘을 악용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기업의 갑질, 직장 내 괴롭힘, 빈곤층 무시, 직업 차별, 난민·이주노동자 혐오 등이 널리 퍼져있는데, 오히려 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눈치를 보고 강자의 심기를 살피느라 약자의 피해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법으로 본 세상 19 세계의 평화 우리의 평화
아니다. 그런 폭력이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피해자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지만, 폭 력을 당하면서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그 런 이유로 자존감이 떨어진다. 심각한 경우 폭력의 이유 를 자신에게서 찾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가해자의 인간성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다 른 인간에게 폭력을 가하는 건 인간성을 잃는 것이다. 가해자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보통은 이미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폭력을 가하는 건 결 국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폭력을 줄이고 없 애야 하는 이유는 그러므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인 간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평화적 공존, 안전한 일상과 삶의 질을 위하여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평화에 대해 언급하고 평화 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서로 다르고, 때로는 평화 를 위해서라면 다수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나 무력을 동 원한 방식도 상관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평화를 자주 언급하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낫다. 어쨌든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일반아파 트와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충돌과 물리적, 정신적 단절 사례가 뉴스에서 다뤄지는 이유는 평화적 공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평화적 공 존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이자 생활 방식이라면 그 에 반하는 일들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평화적 공존은 사실 거창한 게 아니다. 크고 작은 공 동체와 사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을 말한다. 평화를 연구하는 이유도 결국은 평화적 공존이 진짜 공동체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모두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를 받는 곳이다. 특별히 평화로운 공동체는 상대적 강자도 상대적 약자도 없는 곳이다. 이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방식을 통해 문제의 제기와 토론이 이뤄지고, 용기를 내지 않아도 누구나 제재를 받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다. 20
이뤄지는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평화적 공존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최고의 선택 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평화적 공존이 이뤄지는 공 동체와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동체와 사회에 사는 건 안전한 일상이 보장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걸 의미한다. 공동체와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알지 못하고 관 계가 친밀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같다. 모두를 알고 모두 와 친밀하게 지내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그냥 가까이 또 는 멀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누구든 그들을 존중하고, 자신 또한 존중받고 있음을 알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잘 살아가면 우리의 일상은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함께 사는 공동체나 사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 람들도 있다. 그런 이유로 평화를 얘기하면서 평화적 공 존이 이뤄지는 공동체나 사회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의문 을 제기하기도 한다. 몇 년 전 강의에서 만난 한 청년이 생 각난다. 강의가 끝난 후 그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강조하 는 것이 자신에게는 불편하게 들렸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공동체와 관련해 좋지 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청년에게 공동체는 나이 든 사람들이 나이 어린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경험 없는 미숙한 존재로 취급 하며, 나이 어린 사람들은 무조건 나이 든 사람들을 공 경하고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하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 도 않은 관계가 정당화되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많은 꼰대를 상대해야 하는 힘든 곳이었 다. 보지 않았어도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상대적 강자도 상대적 약자도 없는 곳 우리는 공동체를 오해하곤 한다. 그냥 같이 모여 살면, 그리고 가끔 서로 살펴주고 도와주면, 그것이 좋 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안에서 나이와 직위에 따른 위계를 강조하는 건 당연하고, 공동체의 원만한 운 영과 작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계의 강조는 누군가에게는 편하고 좋지 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으며, 그런 공동체라면 진 짜 공동체라 할 수 없다. 많은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일 뿐, 바 람직한 공동체는 아니다. 진짜 공동체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모두가 평등하 고 공정하게 대우를 받는 곳이다. 나이, 부와 교육 수준, 가족과 민족 배경, 그리고 지위나 직위 등은 한 사람의 정 체성을 드러내고 역할을 구분하는 것일 뿐, 타인을 무시 하고 통제하며 무언가를 강제할 자격이 되지 않는 곳이다. 특별히 평화로운 공동체는 상대적 강자도 상대적 약 자도 없는 곳이다. 이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방식을 통해 문제의 제기와 토론이 이뤄지고, 용기를 내지 않아도 누구나 제재를 받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다. 도시에서, 그것도 주로 아파트 같은 주거 형태가 대 부분인 곳에서 공동체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각자도 생에 익숙하고 타인의 간섭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 공동체는 특별한 곳에서만 실현 가능한 희소성 높은 가치가 됐다. 그래서 아예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 다. 그런데 공동체는 매일 얼굴을 보고 수다를 떨고 함 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여본 적이 없는 사 이라 할지라도 각자 자기 역할을 한다면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평화로운 공존이 이뤄지는 공동체와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 모든 사람을 존중하 고, 자신만의 편안한 삶이 아니라 모두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와 사회 구성원의 역할 말이다. 법으로 본 세상 21 세계의 평화 우리의 평화
1. 노동이사제란? 노동이사제란, ‘노동자’ 대표가 ‘이사’ 자격으로 이 사회에 참여하여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그간 갑론을박이 이어져 오던 공공기관 노동이사 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이하 ‘공공기관운영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1.11.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이어 1.25.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 되었다. 법률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됨에 따라 올해 하반 기 약 130여 개의 공공기관에서 노동이사제가 본격적으 로 시작된다.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3 년 이상 재직한 근로자 중 근로자대표의 추천이나 근로 자 과반의 동의를 받은 자 1명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하여 야 한다. 선임된 비상임이사, 즉 노동이사는 근로자 신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비상임이사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다. 노동이사의 임기는 2년이며,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 하다. 2. 법률과 판례로 살펴보는 노동이사제 도입의 취지 공공기관 경영과 사기업 경영의 차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의 취지를 알아보기 위 해서는 먼저 「공공기관운영법」의 명문 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운영법」 제1조(목적)는 “이 법은 공공기 관의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과 자율경영 및 책임경 영체제의 확립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 고 있으며, 동법 제3조(자율적 운영의 보장)는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공공기관 공공기관 경영부실 견제, ‘노동이사제’ 사회적 관심 필요해 노동이사제 도입 「공공기관운영법」 개정법률의 쟁점과 과제 차연수 노무사(대상노무법인) 22 주목! 이 법률
공공기관의 자율·책임경영과 노동이사제 그렇다면 공공기관의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과 노 동이사제 도입은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지난 1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 날, 참모 회의에서 ‘공공기관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되는 노 동이사제는 우리 사회의 경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이는 노동이사제가 공공기관의 부실화를 초래하 는 경영 기회주의를 견제하고, 상향식 의사결정의 기회 를 보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실 현하고, 그 고유목적에 따라 충실히 운영될 수 있도록, 제 기능을 다하게 만드는 하나의 제도적 장치라는 측면 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점은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함으로써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개선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언론에서 ‘공공기관 부실화’라는 말을 종종 접한다. 흔히 공공기관 부실화의 주된 원인으로는 낙하 산 인사, 기획재정부의 강력한 권한과 통제, 외부 감시, 하향식 의사결정 등의 구조적 문제가 꼽힌다. 공공기관이 부실화되면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 력에 결국 국민의 세금이 쓰이고,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 로 인한 불이익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 역 시 공공기관 운영에 자율성 및 독립성이 필요한 근본적 인 이유가 된다. 「헌법」 제119조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 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 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 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경제민주주의에 대한 정 부의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국가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공공성 및 사회적 가치 실 현을 위해 자율적·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공기관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 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각 규정에서 동일하게 등 장하는 ‘자율경영(자율적 운영)’과 ‘책임경영체제’라는 문구이다. 현대사회의 조직 운영에 있어서 자율과 책임 은 비단 공공기관에서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니다. 그러 나 그러한 문구가 법률에 명문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공 공기관 운영에서 위 가치가 지니는 당위성, 그 자체를 선 포하는 의미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한편, 「헌법」 제119조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 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기본원리로 선언하고 있다. 이는 판례(대법원 2003.7.22., 2002도7225)가 기업의 경영권을 기본권으 로 인정하는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필자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의 취지가 바로 이 부분, 경제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사기업과 달리, 공 공기관은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공공기관의 경영과 사기업의 경영은 자율과 자유, 두 단어와 같이 유사한 듯 보이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자율(自律)’이란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 라 어떤 일을 하는 일, 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 여 절제하는 일을 의미하는 반면, ‘자유(自由)’란 외부적 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공공기관의 경영에 자유가 아닌 자율이라 는 단어가 쓰이는 이유는 공공기관 운영의 궁극적 목적 이 경제적 효율성이 아니라 ‘공공성 실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공공기관은 대국민 서비스 공급자로서 시장경 제원리에 따른 자유로운 경영의 방식이 아니라 각종 외 압으로부터 스스로 통제하고 방어하여 그 고유목적 사 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자율경영의 방식을 취 해야 하는 것이다. 주목! 이 법률 23 법으로 본 세상
제고를 위해 노동자가 직접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제민주주의 실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의 취지라고 볼 수 있다. 3. 해외의 노동이사제 도입과 운영 사례 또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면, 노동이사제는 경영참 가의 제도적 보장이자 참여형 노사관계 실현의 수단으 로서, 이미 국제적으로(유럽 기준) 보편적인 개념이다. OECD 38개 회원국 중 19개국에서 입법을 통해 운영 중이며, 법제화 없이 시행 중인 회원국까지 합치면 총 21개 회원국에 달한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 덴, 덴마크 등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민간 부문으로 까지 확대하여 시행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노동이사제가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유는, 독일 공동결정제의 영향과 이원화된 이사 회 운영체제를 들 수 있다. ‘공동결정제(Mitbestimmung)’란 노사 공동의 의 사결정권을 보장하여 경영상 최고의사결정을 공동으로 행하고, 이에 대한 실행 및 결과도 공동으로 책임지는 제도로, 노동이사제보다 경영참가 보장 수준이 높다. 한편, 대다수 유럽 국가의 경우 단일 이사회 로 구성된 우리나라와 달리, 경영이사회(Board of Management)와 감독이사회(Supervisory Board)로 구 분되는 복수의 이사회를 운영한다. 경영이사회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실질적인 경 영활동을 담당하며,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에 대한 감독 및 통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에 따라 노동이사제를 도입 중인 유럽 국가마다 각 나라의 사정에 맞게 노동자 대표가 비상임이사로 참 여할 수 있는 이사회 유형을 다르게 정하고 있다. 4. 우리나라 노동이사제 도입의 배경 우리나라에서 노동이사제를 처음 도입한 곳은 서 울시다. 서울시는 2014년 처음 도입계획을 밝힌 뒤 2016 년 9월 「서울특별시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이에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및 투자·출연기 관 20개 곳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조례에 따라 근로자 수 300명 이상인 곳은 2명, 300명 미만인 곳은 1명의 노동이사를 선임한다. 서울시 에서 노동이사제가 최초로 도입된 이래로 현재 부산, 인 천, 광주, 대전, 울산, 경기, 충남, 수원, 부천 등 14개 지자 체에서 조례를 통해 노동이사제를 운영 중이다. 한편, 노동이사제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였고, 2020년 더불어민주당 의 총선공약으로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언급되어왔으나 그 입법화에 좀처럼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제20대 대선 정국에서 여당과 제1야 당의 대선후보가 잇따라 노동이사제 도입에 긍정적 견 해를 밝히면서 해당 법률 개정안 통과에 무게가 실렸다. 결국 제21대 국회가 2022년 첫 본회의에서 「공공기 관운영법」 개정안을 약 84%의 찬성으로 의결하기에 이 르렀다. 지난 2.11., 대선후보 2차 TV토론에서도 공공기 관 노동이사제 도입과 관련한 공방이 오가기도 하였다. 5. 노동이사제 도입에 관한 견해 차이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은 대표적으로 노동이사제를 통한 공공기관 경영의 투명성과 자율성 제고는 노동이사가 중립성을 지키며 조합원이 아닌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공공기관의 공공적 역할을 주지시킬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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