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4월호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1996)가 당선됐고, 소설집 『행복』(2004)과 『봄빛』(2008) 외 다수 의 작품을 썼다. 단편소설 「풍경」으로 ‘이효석문학 상’(2006)을, 소설집 『봄빛』으로 ‘올해의 소설상’(2008) 과 ‘한무숙문학상’(2009)을 받는 등 다수의 상을 받으며 문학성을 입증 받았다. 그리고 3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 일지』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며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문학평론가 정홍수)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 는다.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 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 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98쪽) 이 소설의 배경은 구례에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3 일 동안이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를 중심으로 얽 힌 사람들의 웃픈 에피소드를 따라가며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굴곡진 삶을 풀어낸다.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 속 에 묵직한 주제를 담아 따뜻하고 뭉클한 감동을 건넨다. 지리산과 백운산을 누비며 혁명을 꿈꾸던 아버지 는 일제 강점기가 끝난 후 위장 자수했고, 자본주의 사회 에서 뼛속까지 유물론자로 살아간다. 아버지는 유물론자답게 죽음 뒤를 믿지 않는다. “죽 으면 그걸로 끝인디 워디 묻히고 안 묻히고, 고거이 뭣이 중하대?” 정말 무덤이 필요 없냐고 묻는 딸에게 아버지 는 “쥐꼬리만 한 나라서 죽는 놈들 다 매장했다가는 땅 이 남아나들 안 헐 것”(93쪽)이라며 꼬실라버리라고 말 한다. 이런 철학으로 살아온 아버지는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라는 십팔 번을 달고 살며 사람들에게 돌려 받지 못할 은혜를 베푼다. 먼지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94쪽) 유물 론자 아버지의 삶은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화에 서 진면모를 드러낸다. 현대사의 굴곡진 삶 이면의 보통사람들의 이야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 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 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더 오랜 세월을 구례에서 구례 사람 으로, 구례 사람의 이웃으로 살았다.”(252쪽)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이라는 금기어 속에 갇혀 해방 이후 박제된 삶을 살았던 ‘아버지’의 이야기 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 는 문장에 아버지의 삶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4년뿐이었지만” 그의 삶을 평생 지배하며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252쪽)었던 시간은 시대의 온기를 입고 이제야 되살 아난다. 아버지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며 살아온 딸은 장례식에서 만난 주변 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아버지의 세계를 이해한다. 아버지와 평생 반목해 온 작은아버지, 아버지가 구 례에서 사귀어 온 친구들, ‘나’와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 지 사이의 일화를 통해 현대사의 굴곡진 삶 이면의 보통 사람들을 만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겹게 넘어왔을 우리들 의 아버지이자 시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해 방일지’는 비로소 박제된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 빛을 본 다. 우리는 ‘아버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버지의 진 짜 모습을 알아가고 이해하도록 이끄는 책이다. WRITER 김민숙 인문학 작가 77 2024. 04. April Vol.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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