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5월호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을 신기하고 흥미로운 표정 으로 지켜봤다. 나하고 놀고 싶은 아이처럼 졸졸졸 따라다니 며 내가 하는 작업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시 선으로 봤다. 고양이와 내가 서로 잘하는 것을 비교해본다. 내가 잘하는 것은 체면치례하기, 강자 앞에서 꼬리 내리 기, 양지를 좇아 변신하고 줄서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변절 하기, SNS로 실시간 소통하기, 책 읽기, 법전 검색하기,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밥그릇 싸움 하기, 시기하고 질투하기, 사 랑하다 미워하기, 달면 삼키고 쓰면 뱉기, 돈 버는 데 에너지 를 집중하기, 아스팔트와 아파트 문화를 탐닉하기 등이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잘하는 것을 보자. 혼자 해결하고 혼 자 살아가기, 그것도 철저히 단독자로 버티기, 아프면 자연치 유 하기, 높은 나무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기, 높은 담장에서 쉽게 뛰어내리기, 높은 담 위에서 졸고 그 자리에서 아예 낮 잠 즐기기, 쏜살같이 빨리 달아나기,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맨발로 생활하기, 옷 한 벌로 평생 살기 등이다. 인간인 나보다 동물적으로 뛰어난 점이 많다. 많아도 너 무 많다. 내가 잘 못하는 것과 고양이가 잘 못하는 것을 따져 본다. 내가 못하는 것은 노숙하기, 혼자 살기, 높이 오르고 빨 리 달리기, 침묵하기 등이다. 고양이가 못하는 걸 보자. 목욕하고 수영하기, 비 오는 날 산책하기, 굽실거리고 꼬리 내리기, 수다 떨기 등이다. 나 는 고양이한테 부러운 게 많다. 반면 고양이가 나를 부러워할 것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고양이를 만나러 갈 때는 자본주의 사전을 벗어던지고 인간 위주의 헌법을 태워버려야 한다. 자연의 눈으로 보면 고양이와 우리 어깨 높이는 같다. 고 양이의 길을 좇아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우리가 잃어버 린 본래의 경로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도시에서 앓게 된 외로움 이나 우울은 고양이와 오래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고양이가 좇는 자연을 같이 응시하 면, 고양이의 넘치는 명랑과 고양이의 빈 주머니에 내가 흘린 땀보다 더 가진 잉여분을 털어 넣는다면, 도시 사회에서 발병 한 우리의 고질병에도 차도가 있을 것이다. 고양이와 우리가 한 식구로 사는 데 걸림돌은 무엇인가. 사람인 우리가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있는 고정관념이다. 우 리만이 영장 동물이고 고양이보다 우등하다는 관념의 경화 가 문제다. 고양이와 우리가 같이 사는 데 디딤돌은 무엇인가. 우리 가 단지 지구의 수많은 동물 중 하나의 종이라고 생각을 낮 추는 거다. 고양이처럼 지구촌을 빌려 잠깐 머물다 돌아가는 한 종에 불과할 뿐이라 인정하고, 고양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결심 하나면 된다. 고양이의 야옹 소리를 고양이 문법으로 번역하면 이렇 다. “사람아, 자연에서 온 것처럼 어서 자연으로 돌아오라, 더 늦기 전에.” WRITER 조재형 법무사(전라북도회) · 시인 77 2024. 05. May Vol.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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