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5월호

전시했던 뤽상부르 미술관의 의뢰로 그린 1892년 작품 이 미학적 관점에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보이며 대중에 게도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 작품은 시대가 흘러 빼어난 “옛 작품”을 모아놓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파스텔로 그렸다고 착각할 정도로 화사한 색감을 자랑하는 작품 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원색 들로 이루어진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보통 대비가 되는 여러 색깔이 섞이면 전체적으로 화면이 탁하고 무거워지기 마련인데, 화가는 오히려 가느다란 붓칠을 여러 번 쌓아올려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절묘한 색채의 사용 때문 에 르누아르는 근대를 대표하는 색채화가라 불린다. 화가는 어째서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라는 주제 에 몰두했을까? 지금 보면 별로 특별할 것이 없지만 당 시 시대와 연관시켜 보면 그림 속에는 산업화와 함께 당시 신흥지배계층으로 급부상한 부르주아의 이상적 인 일상생활을 상징하는 사물들로 가득하다. 손질이 잘 된 하얀 드레스와 분홍 드레스를 입은 어린 주인공들 뒤로 녹색과 적색이 어우러진 풍성한 커튼이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내실에는 괘종시계와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다. 촛대 달린 피아노 역시 부유 함의 상징이다. 피아노 위에는 방금 정원에서 꺾은 듯한 들꽃이 화려한 꽃병에 흐드러지게 담겨있다. 고된 노동의 현장 이 아닌 잘 꾸며진 안락한 집 안의 거실에서 어린 소녀 들은 악보를 들여다보며 소곤소곤 자못 진지하게 이야 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들의 뺨에 서린 홍조는 작품에 생동감을 더한다. 절묘하게 숨겨진 삼각형 구도와 보색을 보완해주 는 둥글둥글한 형태들 역시 그림의 주제와 완벽한 조 화를 이룬다.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누구나 꿈꾸는 교양 있고 안락한 가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 기에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작품 속의 소녀들은 어떤 음악을 연주하 고 있었을까? 피아노 입문자를 위한 피아노 소나타, 단순하지만 높은 예술성 아직 어린 그녀들에게 쇼팽과 같은 기교가 화려한 음악은 어 울리지 않는다. 전문 음악인이 아닌 숙녀로서 교양을 갖추기 위하 여 배우는 수업은 그다지 난이도가 높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구 김살 없는 소녀들에게 어울리는 밝음이 가득한 작곡가라면 당연 히 모차르트 아닐까? 그중에서도 1788년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6번」이 제격이 다. 음악을 모르는 문외한이라도 단 두 소절만 들으면 “아, 이 음 악!”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이다. 대한민국 피아 노 학원의 BGM이랄까? 익숙한 “도-미솔-시-도레도”로 시작되는 첫 주제를 들으면 처 음에는 반갑다가도 이어 나오는 빠른 패시지에 괴로웠던 시간이 생각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대가들의 완벽한 연주를 듣다 보 면 ‘이 곡이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악 보나 선생님이 아니라 미숙한 필자의 실력이 문제였음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활동할 당시 부업으로 여러 제자들을 가 르쳤는데,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은 그의 학생들을 위해 작곡한 곡 이라 여겨진다. 그렇기에 작곡가가 아닌 스승 모차르트의 마음이 느껴지는 따뜻한 곡이다. 작곡가가 “초보자를 위하여(for beginner)”라고 따로 부제를 붙일 정도로 음악의 형식과 기교는 단순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성 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어렵다고 해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차르 트 특유의 천진함과 유쾌함이 스며든 이 작품은 놀랍게도 모차르 트가 병마와 경제적 고난으로 힘들었던 말년에 작곡했다. 비록 시대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지만 “고통은 지나가도 아름 다움은 남는다”는 르누아르의 모토처럼 두 예술가의 작품 어디에 서도 그들이 겪은 말년의 고통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두 대가는 예술의 의미를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을 통하여 타 인을 위로하고 삶의 기쁨과 행복을 일깨워주는 데서 찾은 것이 아 닐까? 그들의 바람처럼 세상에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 더욱 많아 지길 소망한다. WRITER 최희은 미술·음악 분야 작가 · 번역가 81 2024. 05. May Vol.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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