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5월호

솔로몬과 소크라테스 기원전 990~931년, 이스라엘 왕국. 두 여자가 솔로몬왕의 법정에 아기를 안고 와서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했다. 솔로몬은 “저 아기가 누구의 아 기인지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으니 그 신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 게 주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한 여자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이 아기는 제 아기가 아닙니다.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 십시오”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여자는 “제가 아기 의 장례라도 치를 수 있게 아기 신체의 반이라도 가 져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솔로몬은 “저 아기를 처음 여자에게 주어라. 그가 아기의 진정한 어미다”라고 판결했다. 한편, 기원전 470-399년, 고대 그리스의 철학 자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원래 숭 배하는 신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종교를 끌어들였 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당시 재판은 먼저 배심원 투표를 통해 유죄 판 결이 나면 형량을 다시 배심원 투표를 통해 결정하 는 제도였는데, 그는 배심원 투표에서 281:220(61 표 차이)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 앞에서 자신의 행위 가 오히려 국가에 공헌한 것이라는 취지의 변론을 하였는데, 그 내용에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하여 배 심원 투표에서 361:140(221표 차이)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원래 무죄에 표를 던졌던 배심원도 그 변론 을 들은 후 상당수가 사형에 표를 던졌다.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무죄 주장이 그렇게 설득력은 없었 던 모양이다. 위 두 가지 역사적인 재판을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솔로몬은 가사사건 중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의 재판장이었고, 소크라테스는 형사사건의 피고인이었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고, 형 사사건은 철저한 수사와 증거재판에 의해 그 진실 이 밝혀지겠지만, 기원전의 고대였기에 솔로몬은 철저하게 자신의 심증에 의존한 판단을 했고, 소크 라테스는 투표에 의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후세 역사가들은 솔로몬은 가장 지혜 로운 재판을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가장 억울한 재 판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공정한 재판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과 함께 재판장 의 지혜로운 판단과 당사자의 현명한 주장에 의해 결론지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읽는 법무사들도 지혜로운 판단과 현 명한 주장에 의해 내 생애 가장 멋진 하루하루를 만들어 가길 기원해 본다. Letter ; Editorial Board’s WRITER 김병학 법무사(서울중앙회) · 본지 편집주간 동정·등록 편집위원회 레터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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