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무사 8월호

작동은 ‘국민의 알권리’라는 「중대범죄신상공개법」 제4조 제1항제3호의 문언을 통해서 정당화된다. 언급한 것처럼 ‘국민의 알권리’의 본질은 일반의 호기심일 테지만 말이다. 라. 알권리 등 공공의 이익? 피의자 신상공개의 예상되는 효과는 요건에 이미 규 정되어 있다. 즉,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주 지적되지만, ‘국민’의 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국 민의 알권리’는 막연한 개념이다. 피의자의 재범방지나 범 죄예방을 내용으로 하는 ‘공공의 이익’ 또한 그 효과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실증 연구가 없을뿐더러, 범행 시 ‘형벌’도 고려하지 않는 범죄자들이 ‘신상공개’를 고려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피의자의 공개된 신상을 통해 더러 그의 여죄(餘罪)를 파악하거나 수사에 협조를 얻을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피 의자 신상공개를 유지하는 제도의 추동력은 실상 피의자 에 대한 일반의 ‘호기심’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이다. 마. 사적 제재로서 신상공개의 만연화 한편에서는 시민들이 범죄자나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는 사람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신상을 공개하는 일(이른 바 ‘신상털이’)이 자주 발생한다. 2020년 초, ‘N번방 사건’에 즈음하여 논란이 된 자칭 ‘디지털교도소’12 와 다시금 재소 환 된 2004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논란인 사적 제 재13 가 대표적인 사례다. 드라마나 영화도 공권력에 미치지 못하는 사적 복수 를 ‘정의(justice)’라는 이름으로 실현코자 하는 욕망을 빈 번하게 드러낸다. 이쯤 되면, 사적 복수는 하나의 문화현상 이라고도 할 만하다. 국가에 의한 일련의 신상공개가 피의자 신상공개제도 로서 국가에 의해 벌거벗은 생명을 재생산하고 특정한 담 론을 실천하는 효과를 낳는다면, 일반 시민이 이를 스스로 실공표죄(제126조8)의 구성요건을 충족한다. 또한, 피의자 가족 등 주변인에게 불필요한 피해가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피의자 신원이 특정됨에 따라 범죄 피 해자에 대한 2차가해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9 신상공개 과정에서 일부 강력범죄 피의자들이 카메 라를 향해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양형을 의식한 듯 과장된 사과와 반성을 연출하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자칫 이 제도가 범죄자의 마이크로 전락하거나 가해자 서사(敍事) 의 계기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10 특히 미디어를 통한 피의자 신상공개는 파급력이 크 고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 다. 다. 예외상태의 발생과 호모 사케르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의 상태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 을까. 그는 헌법의 무죄추정 원칙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다. 개인 신상이 공공연하게 적시되었지만 명예훼손의 법 조문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공표했지만 피의사실공표 법조문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 한다. 법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 지점에서 「중대범죄신상공 개법」은 ‘무죄추정’이라는 보호막(기본권)을 거두어버리고 그의 피의사실 등 명예(법익)를 거침없이 침해한다. 법에 의해 헌법상 기본권과 형법상 법익이 제거되었 다는 점에서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정치적으로나 사회 적으로 생명이 박탈되었다. 이로써 범죄자로서 취급되어 죽일 수는 있지만 희생물로 바칠 수 없는 존재, 아감벤 (Agamben)의 개념을 빌리면 ‘호모 사케르(homo sacer)’ 가 된다. 11 당연히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그 지점에서 법의 보 호가 유보되고, 그의 기본권과 인권, 그리고 법익이 배제되 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예외상태’가 되는 것이다. 예외상태 를 만들어내면서 국가는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을 생산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확인시킨다. 국가가 자신의 권력을 확인시키는, 이른바 생명정치의 법으로 본 세상 주목 이 법률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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