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윗집인데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와 함께 윗집 사람이 찾아온 것은 작년 6월 무렵이었다. 그날이 휴일이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파자마 차림으로 쉬고 있다가 문을 열었더니 낯 선 남성이 서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이사를 왔는데, 욕실에 세탁 기 호스를 연결하려고 보니, 아래 배수관이 먼지 같은 것 들로 막혀 있어서요….” 20년째 별 탈 없이 지내오던 우리 집, 그리고 법무사 인 나조차도 피해갈 수 없었던, 생활 속 작은 분쟁은 이 렇게 시작되었다. “아래층에서 배수관 좀 뚫어 봐도 될까요?” 아파트 윗집의 정중한(?) 공사 요청 “저희가 위에서 배수관을 뚫어보려 했는데 관이 ‘ㄴ’ 자로 꺾여 있어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들어가 아래쪽 에서 배수관을 좀 뚫어 봐도 될까요?” 윗집 사람은 정중하게 20분 정도만 협조해 달라고 했다. 사실 그 문제라면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세탁기 배수관은 막혀 있었고, 바닥이 좀 흥건해지긴 해 도 세탁기 호스를 밖으로 빼서 세면대 아래 주배수구로 물을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20년째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도 한 번 뚫어보려 했지만, 시멘트 같은 게 막고 있는지 쇠꼬챙이로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냥 쓰고 있어요.” 나는 우리 집의 상황을 설명하며, 그냥 그대로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취지를 전했지만, 그는 시멘트로 막혀 있는 우리 집 상황과는 다르다며, 기어코 욕실 천장을 열 어 막힌 배수관을 뚫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아래윗집 간에 야박하게 거절하기도 뭐해서 일단 들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천장의 배관 파이프 마개가 열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포기하겠지 싶 었으나, 그는 자기 집 공사를 한 인테리어 업자를 보내겠 다며 한 번 더 협조를 요청했다. 주말 저녁에 뭔 일인가 싶어 살짝 짜증도 났지만, 아 파트에 살고 있으니 협조하지 않을 도리도 없어 저녁도 미뤄가며 기다리다 막 밥을 먹으려는 순간 “띵동!” 벨이 울렸다. 그 인테리어 업자였다. 그런데 인테리어 업자는 마치 수색 영장이라도 들고 온 사람처럼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어와 공사를 강행하 려 들었다. 나는 주말 저녁에 무슨 공사냐며 다음날 낮에 오라고 했지만, 그는 “한 번만 열어보면 금방 끝난다”며 막무가내였다. ‘차라리 얼른 보게 하고 돌려보내자’ 싶어 욕실 천장을 다시 열었지만, 비닐로 칭칭 감긴 파이프 뚜 껑은 단단히 밀봉돼 있어 이번에도 열 수 없었다. 그러자 인테리어 업자는 “장비를 가져와 다시 해 보 겠다”며 또다시 협조를 요구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플라스틱 파이프는 쉽게 손댈 수가 없는 구조였다. 휴지 나 먼지 따위로 막혔다면 윗집에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우리 집까지 와서 공사를 시도하는 걸 보면, 우리처럼 시멘트 같은 것으로 막혀 있는 것이 분명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사코 장비를 가져와 뚫어보겠다고 고집하니 나도 언성이 높아져 “나가달라”고 했다. 하지만, 업자는 윗집 사람보다 더 필사적으로 배수관을 뚫고야 말 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결국 난생처음 내 입에서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이 나오고 나서야 겨우 내보낼 수 있었다. 법무사조차 피해갈 수 없는 생활 속 분쟁. 20년 넘게 살아온 집의 배수관 공사를 둘러싼 이 웃 간 갈등이 예기치 않게 법적 문제로까지 번져 간다. 이 글은 법적 판단과 현실적 대처가 교차하는 순 간, 어떤 기준과 태도로 대응해야 할지를 진솔하 게 보여준다. 법무사 본인이 직접 경험한 리얼 민 생사건 이야기. <편집자 주> 15 2025. 07. July Vol.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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