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업자는 수시로 우리 집을 찾아와 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며 공사 협조를 요구했다. 그 덕분에 조용하던 아파트 복도 가 시끄러워져 우리 옆집 아주머니까지 나와 두리번거리 는 통에, 동네 보기가 창피해 다시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막무가내 인테리어 업자 앞세운 공사 압박, 담보 요청하자 조정결정문 내밀어 그사이, 처음에 찾아왔던 윗집 주인이 또다시 우리 집 문틈에 편지 한 장을 끼워놓고 갔다. 이름이나 연락처 도 없이, 이상하리만큼 정중하고 간곡한 어투로 공사 협 조를 읍소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인테리어 업자만 내세워 마치 수사관처럼 수시로 우리 집 문을 두 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우리도 지칠 대로 지쳐, 이쯤 되면 그냥 윗집 뜻대로 해주고 이 사단을 끝내자는 심정이 들 지경이었다. 결국 몇 차례 더 문을 열어 업자를 들여보냈지만, 그 는 여전히 파이프 마개를 열지 못했다. 장비를 가져와서 뭘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약한 플라스틱 파이프에 금이 가거나 파손이라도 된다면, 윗 집 세탁기 물이 우리 집 천장으로 쏟아질 수도 있어서 그 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도 직접 상황을 확인하고자 수시로 위층 에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모든 상황이 어딘가 이상했다. 몇 달 전 요란한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후부터는 사람이 사는 기척이 없었고, 처음 찾아왔던 집주인은 연락도 되 지 않았다. 우편함엔 쌓인 고지서도 방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불안한 동거가 계속되다가 한동안 잠잠하기 에, 이제는 단념하고 우리처럼 세탁기 호스를 밖으로 빼 서 쓰려나 보다 생각할 무렵, 윗집으로부터 다시 한번 정 중한(?)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물론 또다시 공사에 대한 협조 요구였는데, 진정성 이 느껴지기보다는 장차 나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제기 하려는지, 그 밑작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고민 끝에 회신을 보냈다. “배수 공사를 하다가 잘못하면 우리 파이프가 금이 가고 거기서 누수가 발생할 것이 염려되니, 정 공사를 하 고 싶으시면 미리 공사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손해에 대한 담보로 ○백만 원 정도를 (제) 계좌에 이체해주시고, 공 사 후 ○개월 동안 또는 ○회 세탁기 사용 후에 아랫집에 누수가 없으면 이를 환급하는 내용으로 합의서를 작성한 후에 공사를 하시거나, 또는 미리 그 담보를 제공하기 꺼 려지신다면 공탁을 하거나 제3자에게 예치하시는 방법 으로라도 미리 담보를 제공해 주신다면 공사에 협조하겠 습니다.” 그러자 지난해 연말경, 윗집 사람으로부터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자신이 인테리어 업자에게 보낸 문자라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세탁기 배수관의) 하자보수를 원만히 해결하고자 내용증명도 발송하고 소비자보호원에 중재도 요청하였 으나, 사장님(인테리어 업자)의 거절과 책임회피로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결국 힘들게 민사소송을 통해 법원 조정결정을 받아 지난주까지 하자보수를 완료한다 는 약속을 믿고 조건 없이 조정을 수락하였습니다. 저는 원만히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상당한 비용 과 시간이 들어간 소송비용과 변호사 비용과 위자료를 일체 받지 않겠다고 배려하고 기다렸으나 사장님께서는 신속하고 원만하게 하자보수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고 생각됩니다. 아래층 집주인도 조건부로 공사를 허락한다고 하니 향후 1주일 이내로 하자보수 완료를 요청드립니다. 그렇 지 않을 경우에는 더 이상의 배려와 기다림은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며 하자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뿐 아니라 긴 시간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반 드시 진행할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지금 꼭 제발 해결해 주세요.” 법으로 본 세상 — 열혈 이법의 민생사건부 16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