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이고 있었다. 나는 업자 주변에 주인아주머니로 여겨지는 한 여성 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하게 공사를 멈춰 달라고 했다. 내가 아랫집 사람이라는 걸 알아챈 주인아주머니 도 당황하며 업자에게 그만 공사를 멈추라고 했지만, 그 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천공기로 바닥을 뚫어댔다. 다급해진 내가 천공기의 전원을 껐고, 그러자 업자 와 그 조수가 내 팔을 붙잡은 채 꼼짝달싹 못 하게 해 놓 고는 다시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화가 난 나는, 주인아주 머니에게 공사를 못 하게 막으라고 계속 소리쳤고, 당황 한 아주머니는 자기 남편을 전화로 불러냈는데, 얼마 후 도착한 남성은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그 윗집 남자가 아 니었다. 윗집 사람의 정체는 임대인, 집값 유지 위해 무리한 보수공사 고집 진짜(?) 윗집 아저씨가 나타나 공사 중단을 요구하 자 인테리어 업자는 그제야 공사를 중단했다. 나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윗집 남자는 소유자(임대인)였고, 오늘 에서야 만난 이 부부가 실제로 윗집에 거주할 임차인들 이었다. 그런데 이 임차인 부부의 입에서 나온 말이 놀라웠다. “저희가 배관이 막혔다고 임대인에게 고지한 건 맞 는데, 그건 임대기간 종료 후 원상회복과 관련해 책임 소 재를 분명히 하려던 것이지, 사는 데는 큰 불편이 없어 공사를 요구하진 않았어요.” 아니, 그런데 왜 임대인은 임차인이 요구하지도 않 은 공사를, 그것도 인테리어 업자에게 손해배상청구소송 까지 제기하며, 그렇게나 무리하게 강행하려고 했던 것일 까.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그 뻔뻔하고도 정중한(!) 임대 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실토했다. “배관이 막혀 있으면 집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잖아 요. 인테리어 업자가 공사를 하다가 실수로 배수구에 시 멘트를 흘려 들게 해서 막힌 것이 명백하니까 손해배상 을 받으려고 했던 거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이상한 조정 결 정이 난 채로 사건이 종결되어, 이렇게라도 업자를 압박 해 공사를 마무리하려고 한 겁니다.” 집값 유지 때문에 공사를 강행했다는 임대인. “우리가 사는 동안은 공사를 하지 말아 달라”는 임차인의 분명한 요구에 결국 공사를 포기했다. 임대인은 탕수육과 고량주로 점심을 함께 하자고 했지만, 신정 초부터 기가 완전히 빠져버린 나는 어색한 미소로 사양하고 그냥 집으로 내려왔다. 법으로 본 세상 — 열혈 이법의 민생사건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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