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업자는 어찌 되었던 법원에서 보수공사를 완료하라는 조정결정이 나왔으니,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가 다시 들어올 것 같은데, 아래층의 고지 식한(?) 인간은 협조를 안 해주고, 그렇다고 자기 돈으로 담보를 걸고 공사하기는 싫으니 무작정 새해 아침에 기 습적으로 천공기를 들고 와 공사를 강행했던 것이다. 아 무것도 모르는 임차인에겐 아랫집이 허락했다고 거짓말 을 하고. 나는 처음 이 사람들이 말한 대로 배수관을 먼지나 휴지 같은 것이 막고 있는 것인가 확인해 보려고 천공기 로 뚫다 만 배수관을 들여다보았는데, 구멍은 여전히 시 멘트로 꽉 막혀 있어 계속 천공기로 구멍을 냈다가는 플 라스틱 재질의 배수관이 남아날 재간이 없어 보였다. 나는 이들이 처음부터 배수관이 먼지 같은 것이 아 니라 시멘트로 막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나를 속 이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는 사 실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항상 윗집이 아랫집에 피해가 안 가게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걸로 불편한 것 전 혀 없으니 제가 이 집에 사는 동안엔 공사를 하지 않으셨 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말문이 막혀 있는 사이, 고마운 임차인 바깥양 반이 임대인에게 공사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분명한 요구 를 했다. 임대인도 더는 어쩔 수 없었는지 마지못해 이를 수용했다. 그간 내게 온갖 욕을 퍼붓고 몸싸움까지 하면서 공 사를 강행하던 인테리어 업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는 듯 순한 양이 되었으나, 여전히 “저기를 조금만 더 파 면 될 것 같은데…” 하며 흰소리를 해댔다. 나는 맥이 풀 리고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업자 일행이 어수선한 현장을 정리하고 퇴 장하자, 임대인이 중국집에 탕수육과 고량주를 시켰으니 함께 점심이나 하자고 선심 쓰듯 제안을 했다. 그러나 신 정 초부터 드잡이를 하는 바람에 기가 완전히 빠져버린 나는, 어색한 미소로 사양하고 그냥 집으로 내려왔다. 임차인이 원하지 않은 보존행위, 강행할 수 있을까? 윗집 임대인이 임차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배관 공 사를 강행하고자 했던 이유는, 본인 말대로 그 집의 가 치 보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런 목적이라 해도, 공사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 사전 예방조치 없이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더구나 임차인이 원치 않는 보존행위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법적 다툼의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한 명확 한 조항은 없지만, 우리 「민법」 제223조는 저수·배수·인 수를 위한 공작물로 인해 타인의 토지에 손해를 주거나 그 염려가 있는 경우, 그 타인이 보수나 폐색의 소통, 예 방에 필요한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625조에 따르면, 임대인이 임차인의 의사 에 반해 보존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임차인이 계약 목 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규정들을 참작하면, 인접 토지뿐 아니라 집합건 물의 아래윗집 관계에서도 배수 공작물의 폐색으로 인 한 공사가 필요하고, 이로 인해 타인의 건물에 손해를 가 할 우려가 있다면, 보수 또는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청구 할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이 분명히 보수공사를 원하지 않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였고, 이를 강행할 경우 인접 한 건물 소유자와의 분쟁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임대인 의 보존행위 강행은 신중히 재고되어야 할 일이다. 최근 아파트 노후화로 아래윗집 간 누수 분쟁이 급 증하고 있다. 이웃 간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 사건 처럼 강제력 없는 조정결정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된다면, 소송비용과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다. 가능하면 조금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이웃끼리 서 로 타협하거나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 지 않을까.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19 2025. 07. July Vol.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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