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7월호

40여 년째 담양 지역에서 ‘기부천사’로 불리고 있 는 문영수 법무사(광주전남회). 이번 호 「법무사가 사는 법」의 주인공인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화를 수십 통 은 걸었던 것 같다. 인터뷰에 앞서 포털 사이트에서 ‘문영수 법무사’를 검색해 읽은 기사들만 보더라도,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분일 것 같아 선뜻 응해 주실 줄 알았다. 1941년생, 올 해 84세로 법무사업계의 대원로 선배님이시다 보니 필 자와 같은 젊은 법무사와는 달리 시간적 여유가 많으실 거라 짐작했으나, 그것은 필자의 오해였다. 운동과 사회활동, 법무사 업무까지 많은 일을 소화 하시느라 좀처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끝 에 어렵사리 통화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나보다 훌륭 한 분이 많은데, 부끄럽다”며 정중히 사양하셨지만, 같 은 광주전남회 소속 어린 후배의 “도와주십시오!”라는 말 한마디에 결국 마음을 열어주셨다. 아직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초여름, 2025년 6월 16 일 월요일. 필자는 너무도 익숙한 광주지방법원 담양등 기소 앞에 있는 문영수 법무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인터 뷰를 진행했다. “받는 기쁨보다 베푸는 기쁨이 더 큽니다.” 기부활동으로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되었던 문영 수 법무사는 이런 인터뷰에 익숙하신 듯, 자리에 앉자 마자 자신의 이력이 쓰여 있는 서류를 먼저 건네주셨다 (역시 경험자는 다르다). 이력서를 보니 거주지가 광주 광역시다. 담양군 사무실로 매일 1시간이 족히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계신다는 말에, 굳이 담양군에 사 무실을 연 이유를 우선 여쭤보았다. “담양군 수북면이 제 고향이니까요. 출퇴근이 힘들 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직접 운전해서 잘 다니고 있어요.” 밝게 웃으시며 답하는 모습이 30대인 필자보다 훨 씬 더 건강해 보이셨다. 문 법무사님은 담양군 수북면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8남매 중 장남으로,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 해 새벽마다 우유와 신문을 배달하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놓지 않았던 덕분 에, 1973년 광주지방법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 었다. “우리 막내가 65년생이에요. 공무원 생활 하면서 동생들 학교 보내고, 장가도 보내고, 그렇게 뒷바라지했 죠.” 박봉의 공무원 생활로는 동생들 뒷바라지만으로 도 벅찼을 텐데, 봉사와 기부, 사회활동까지 어떻게 감 당해 오신 걸까. 그는 40년 넘게 담양에서 ‘기부천사’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땐 참 가난했어요. 밥도 없어 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이었죠. 그래도 어머니는 읍내에 다녀오시면 꼭 이 웃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먹을거리를 나눠 주셨고, 아 버지도 이웃들에게 식사와 술을 대접하는 데 인색하지 않으셨어요.” 그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란 덕분에, 자연스레 나누는 삶을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였다고 했다. “받는 것보다 베푸는 기쁨이 훨씬 큽니다. 저희 집 가훈은 ‘근면·검소·봉사’예요.” 베푸는 삶을 실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는 아내의 내조가 가장 크다고 답했다. 언 제나 자신의 길을 응원해주었고, 이는 자녀들도 마찬가 지라고. 고향 담양군을 대표하는 기부천사 그의 나눔은 어느새 삶 전반으로 스며들었다. 수 없이 많은 표창장의 이력이 그것을 증명한다.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법원행정처 장 감사장, 법무부장관 감사장, 광주고등법원장 감사장, 광주지방법원장 표창장,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표창장, 55 2025. 07. July Vol.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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