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 오전, 필자는 경의중앙선 도농역에 서 10여 분을 걸어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인근 법 조타운에 도착했다. 그곳엔 오늘 만남의 주인공, 김명조 법무사(경기북부회)의 사무실이 있었다. 오랜 세월 법조계에 몸담고 법과 인연을 이어오며 소설가로서 집필활동도 꾸준히 해온 김 법무사는, 아버 지의 뜻을 따라 변호사가 된 그의 아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의 첫인상은 1946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평소 빈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의 필자가 나도 모르게 “정말 젊어 보이세 요.”라고 첫인사를 건넸을 정도로. 사무실에 들어가자 일단 벽면을 장식한 많은 양의 책에 압도되었다. 법률 관련 도서와 소설 등 각종 문학작 품들이 책장 가득 빼곡히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그 가 출간한 작품들도 다수 자리하고 있었는데, 형형색색 조화롭게 뒤섞인 책들이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했다. 소설가로 입신양명 꿈꾸며 퇴직했지만, 법무사가 나의 천직 “다른 법무사들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셨겠지만, 저는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법시험 공부를 했습니 다. 경제난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서울시 공무원, 부산세 관 7급, 부산지방검찰청 7급 공무원 생활을 하며 주경 야독을 했어요. 마흔을 넘어서까지 그렇게 발버둥을 치 다가 결국은 1987년 제9회 법원행정고시에서 최고령자 로 합격했죠.” 법원행정고시 합격으로 법원 공무원으로 근무하 던 그는, 1992년 베트남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중편 소설, 「불회귀선」이 서울신문사 공모 제1회 『계간문예』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공무원 생활을 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 어갔다고 하는데, 직장에서는 이를 전혀 내색할 수 없 었다고. 등단했을 때가 법원행정처 총무과 사무관으로 근무할 때였는데, 당시 상사의 눈이 두려워 신문사의 취 재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등단 2년 후인 1994 년, 장편소설 「신은 우리의 불꽃을 불어서 끄네」로 제5 회 MBC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신은 우리의 불꽃을 불어서 끄네」는 부산세관과 부산지방검찰청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에요. 부산지검 검사 출신 변호사의 변사사건에서 모티브를 얻 었죠. 이 작품 때문에 가슴에 헛바람이 들어 법원을 퇴직 하고 나왔는데, 너무 빨리 떠난 것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16년간의 사법고시 준비에 지쳐 차선책으로 택했 던 법원행정고시에 최고령으로 합격한 후 시작된 법원 조직 생활은 그에게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채워지지 않 는 갈증을 주었다. 결국 공직 생활 7년 차에 법원을 떠 나 1994년 법무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물론 멋진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로서의 포부를 품고 말이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법원 생활을 스스로 박차 고 나와, 소설로 입신양명하겠다는 생각이 과욕이었음 을 이태 뒤 터진 IMF로 문화계가 폭삭 주저앉은 후에 야 깨달았지 뭡니까.” 법무사 개업과 동시에 작가로서 자유로운 집필 활 동을 꿈꾸며 퇴직했던 그였기에, 당시 국가부도 사태로 인한 문화계 추락의 찬바람은 그의 가슴에는 칼바람이 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수험생활로 축적했던 법률 지 식 덕분에 법무사 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 는 94년 개업한 후로 단 한 번도 가슴에서 법무사 배지 를 뗀 적이 없어요. 법무사는 저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 진, 나의 천직입니다.” 법무사와 작가, 양극단에 있지만 서로 시너지 효과 문단의 인정을 받는 소설가를 만났으니 뭔가 본질 45 2025. 09. September Vol.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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