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날처럼 평범한 하루였다. 오랜 지인이 다급한 얼굴로 사무실을 찾아와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 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마침 그동안 골머리를 앓던 복 잡한 등기 사건을 무사히 마친 터라 기분이 한결 가벼운 상태였는데, 지인은 오히려 그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고 했다. 오늘 소개하는 사건은, 18년 전 의뢰인이 장래에 자 금이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은행과 가계대출 약정을 맺 고 근저당권을 설정했으나 실제 대출은 실행하지 않았 기 때문에 거의 잊고 지내다 최근 은행으로부터 갑작스 레 체납된 연체금을 변제하라는 고지를 받으면서 비롯된 사안이다. 대출 받은 적도 없는데, ‘한도 미사용 수수료’ 연체금 990만 원을 내라고? 의뢰인이 문제의 은행과 가계대출 약정서에 서명을 하고 주택에 근저당권을 설정한 것은 18년 전인 2007년 1월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뜻을 품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 한 수험생으로, 근처 독서실을 다니며 시험공부를 하면 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수험생활이 길어지자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아졌고, 마침 은행에 다니던 매형이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 기 전에 가계대출이라도 미리 하나 받아 두면 좋겠다고 하여 얼떨결에 인감과 도장을 보내 약정을 체결했고, 그 결과 근저당이 설정되었다. 이 일이 나중에 화근이 될 줄 은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사회생활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수험생 가장의 신분 으로, 실제 대출이 필요할 때 쉽고 유리하게 받을 수 있 도록 매형이 편의를 제공한 것인데, 그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묻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이 일을 잊고 지냈는데, 가끔씩 등기부등 본 을구에 근저당이 잡혀 있는 것을 볼 때면 “지금이라 도 이 근저당을 말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시 설 정 비용을 내가 부담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주변에 묻기도 하고, 시험에 합격해 자 리를 잡은 후에는 스스로 은행에 연락해 말소 절차를 밟 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실제 대출을 받은 적이 없으 니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난 6월, 은행의 상담원으로부터 갑작스레 전화와 문자메시지까지 받았다. “대출금 연체금이 20여 만 원 정도 있는데 당일 23시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연체 정보가 신용정보회사에 제공되어 신용등급 하락, 카드 사용 제한 등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상환하지 않 으면 계속 독촉 전화가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의뢰인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보이스 피싱이 의심되 어 “그 은행에 대출이 없는데 도대체 어느 계좌로 입금하 라는 것이냐?”라고 물었으나, 상담원은 “그 계좌번호를 전부 알려줄 수는 없다.”고 해서 의뢰인이 직접 은행에 전 화해 확인해 보니 자신의 이름으로 9,973,702원의 채무 가 조회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뢰인이 은행과 가계대출 약정을 맺고 주택에 근저당을 설정한 것은 2007년 1월이었다. 이후 그는 대출을 실행하지 않았기에 문제 될 일이 없다고 여겼으나, 지난 6월 느닷없이 은행으로부터 ‘연체금 20여 만 원을 당일 납부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른다’는 독촉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를 초과한 금액일 뿐, 실제 누적 채무는 이미 1천만 원에 달해 있었다. 11 2025. 10. October Vol.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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