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0월호

해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은 거의 판독불능이었고, 어디에 ‘한도 미사용 수수료’ 조항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은행이 이를 근거로 연체금을 청구하는 이 상 실제 약정서 어딘가에 관련 문구가 있을 가능성이 컸 고, 불명확한 자료만으로 대응 논리를 세워야 하니 사건 이 만만치는 않았다. 어떻든 나는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 고 판단했고, 의뢰인을 도와 은행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의 소를 진행키로 했다. 그날 밤, 소장을 작성하면서 사건의 쟁점을 세 가지 로 정리하며 논지를 구성해 나갔다. 우선은 「약관규제법」 제3조제4항 및 「금융소비자보호법」 제19조에 비추어 은 행의 설명의무 위반을 주장했다. 은행은 대출 실행 여부 와 무관하게 매달 수수료가 발생하고 그 위에 이자가 붙 는 핵심 정보를 사전에 분명히 알렸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아가 은행이 주장하는 미사용 수수료와 그 이자 는 「민법」 제163조제1호의 “이자·사용료 기타 1년 이내 의 기간으로 정한 (정기급) 금전채권”에 해당하므로, 3 년 단기시효가 적용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2007.1.17. 이 후 매월 발생한 수수료 채권은 각 발생일로부터 3년이 도래한 때 시효 완성으로 소멸되고, 은행이 독촉 전화 를 한 2025.6.25.을 기준으로 역산하면 2022.6.26.부터 2025.6.25.까지 최근 3년간 누적된 수수료 및 이자합계 인 금 1,934,176원만이 시효가 살아 있고, 그 이전의 연체 금액은 모두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는 논리의 구성이 가능했다. 일부 입금액 100만 원의 시효이익 포기 추정, 새로운 대법 판례로 반전 그런데 문제는 의뢰인이 급박한 상황에서 100만 원 을 먼저 이체한 사실이었다. 이는 소멸시효가 살아있는 연체금액 1,934,176원 중 그만큼이 공제되어 934,176원 만 현재 남은 채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 으나, 은행 측으로부터 의뢰인이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주장할 여지를 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당시 대법원 판례 는 ‘시효완성 후’ 채무를 변제한 경우, 그 시효완성 사실 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보았기 때 문이다. 이를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고민 끝에 나는 이러한 논리를 세웠다. 우선 의뢰인이 급히 100만 원을 이체한 것은 그 채무의 성질이 한도 미사용 수수료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피고 측이 연체된 대출금을 당일 23시 까지 지급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으며, 계 속해서 독촉전화가 갈 것이라고 압박하여 이를 해결하고 자 한 것으로서, 의뢰인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을 모르 고 지급한 것이 너무 자명하다. 또한, 위 100만 원은 18년간 누적된 총액 중 최근 축 소된 대출한도인 970여 만 원을 초과한 20여 만 원을 우 선 충당하기 위해 피고 측 요구에 따라 우선 지급된 것이 고, 나머지 금액 역시 최근에 발생하여 아직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수수료 부분에 충당하고자 한 것이 원 고의 의사이며 또한 피고 측의 요구였다. 따라서 위 100만 원은 소멸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최근 3년 내에 발생한 한도 미사용 수수료와 이 자 부분에 충당하는 것이 「민법」 제476조(지정변제충당) 의 법리에 맞고, 설사 당사자들이 충당할 채무를 지정하 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채무자에게 변제이익이 많 은 아직 시효가 완성되지 아니한 최근 채무에 우선 충당 하는 「민법」 제477조제2항(법정변제충당) 규정에 부합 한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지난 7.24. 시효완성 추정과 관련해 이례적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23다24029) 이 나왔다. 대법원이 기존의 입장을 깨고, 시효 완성 후 채무 승인이 있더라도 이를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로 추 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인하여 그 기산일로 소급 하여 채무에서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점 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13 2025. 10. October Vol. 700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