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0월호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의 채무자라 면 이처럼 자신의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고 굳이 불 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히려 경험칙에 비추어 보면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 서 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 표시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이는 경험칙에 반한다.” 이 판례 덕분에 소장의 주장이 완전한 힘을 얻게 되 었다. 소를 제기하지 않아도 된다.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어보라.” 소장을 작성한 다음 날, 친한 동료 법무사와 이번 사 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이런 사건은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민원을 넣어 보면 의 외로 쉽게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조언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즉시 의뢰인과 상의하여 소 제기는 잠시 미루고 은행과 금감원 순서로 민원을 넣어보기로 했다. 먼저 해당 은행 지점에 정식 민 원을 접수했다. 지점은 “2주 내 검토 후 결과를 통지하겠 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기한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다시 확인하니, 사건을 접수한 직원이 “타 지점으로 발령되어 지점 차원 에서 별도 조치가 어렵다”며, 필요하면 금감원 민원을 제 기하든 소송을 하든 알아서 하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바로 다음 날, 금감원에 연체금 전액 탕감 및 설정 근저당 말소를 구하는 취지로 정식 민원을 접수했다. 그 러자 금감원은 사건을 소위 ‘자율조정 대상’으로 분류하 여 은행에 통보했고, 3주 내 은행이 제시하는 조정안에 의뢰인이 동의하면 사건이 종결되며, 불성립 시 금감원이 재검토하겠다고 안내했다. 의뢰인과 나는 노심초사 조정안을 기다렸으나 은행 은 4주가 지나도록 회신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콜센터로 부터 “연체금 재발생분을 납부하라”는 독촉 전화, “미납 시 채권추심회사로 이관하겠다”는 협박성 문자만 날아 와, 의뢰인의 쓰린 상처에 소금을 계속 뿌려댔다. 그러다 9월이 되니 그제야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본사에서 2007년 약정서 원본을 찾았는데, 그 안에 한도 미사용 수수료 조항이 존재하므로 전액 면제는 곤란하 다는 입장이었다. 또, “이 상품은 20년 만기 구조라 약정 후 장기간 별 도 안내가 없었던 것이고, 그동안은 누적액이 대출한도 범 위 내여서 통지 필요성이 낮았으나, 시간이 지나 대출한 도가 점차 축소되고 누적액이 커져 한도를 초과하게 되자 연락을 드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은행은 이와 같은 입장 을 그대로 금감원에 제출하겠다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계약서에 ‘미사용 수수료’ 조항이 없다. 금감원 조정 결정에 은행 측 결국 백기 금감원 민원에 대한 은행의 입장을 확인한 뒤, 나는 약정서 원본 계약서의 선명한 사본을 직접 확인해 보기 로 하고 의뢰인과 함께 지점을 방문했다. 그러나 계약서 어디에도 ‘한도 미사용 수수료’에 관 한 명시 조항은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기재되거나 체크 표시가 되어 있어야 할 대출 개시일과 만기일, 이자율, 고 정·변동금리 표시, 지연배상금률 등도 모두 공란이었으 며, 오직 대출한도만이 기재되어 있었다. 나는 담당 직원에게 ‘한도 미사용 수수료’ 조항이 정 확히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는데, 직원은 한참 동안 약정 서를 뚫어져라 살펴보더니 “사실은 2007년 1월 계약 당 시에 최신 약정서(양식)를 썼어야 하는데, (실수로) 2005 년도 약정서(양식)로 날인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너무 어이 가 없기도 하고, 이제 제대로 길을 찾았다 싶기도 해서 표 정관리를 하고 있는데, 당황한 직원이 지점장실에 들어가 법으로 본 세상 — 열혈 이법의 민생사건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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