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0월호

한참을 쑥덕이며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그제야 은행은 은행대로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의뢰인과 나는 은행에서 금감원에 어떤 입장을 내는 지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전히 소식이 없어 참 다못한 의뢰인이 은행에 전화해 물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직원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많이 기가 죽어 있 는 것 같더란다. 나는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7월 12일 오 전 10시까지 결과를 알려달라고 하는 게 좋겠다”고 안내 했다. 그러자 얼마 후 마침내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늦어 도 9월 말까지 환출(정정·환급) 처리를 진행하고, 그 절차 가 마무리되면 근저당을 말소하겠다”는 통보였다. 소송까지 가지 않고 이미 입금된 100만 원을 환급 받고 근저당 말소까지 깨끗하게 해결되어 의뢰인도 나도 매우 기쁘기는 했으나, 뒷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가 없 었다. 은행 측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그 어떠한 사과의 말 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이 일이 그냥 넘어갈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며 은행에 정식으로 항의해 은행장 이름으로 된 공문 형 식의 사과문이라도 받겠다고 했다. 계약 이후 18년 동안 단 한 차례라도 ‘한도 미사용 수수료’ 발생으로 매달 3~4만 원씩 쌓이고 있다는 사실 을 알려주었더라면, 그리고 의뢰인 측에서 항의했을 때 한 번이라도 본사 창고에 있는 약정서 원본을 찾아 확인 해 봤더라면, 더 근본적으로는 애초부터 제대로 된 계약 서 양식을 사용하고 핵심 항목을 빠짐없이 기재했다면, 이런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은행을 찾아준 고객에게 너무도 무성의하고 오만한 대응이었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주금납입증명서 발급을 위해 같은 은행의 다른(소위 ‘부자’ 동네) 지점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갔다가 나중에는 회사 대표와 법인 도장과 통장을 들고 다시 방문했는데, 어디선가 지점장과 팀장이 뛰어나와 “대표님이 오셨는데 재빨리 레드카펫 을 깔아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같은 은행의 고객이건만 이토록 극명한 대비를 보이 는 응대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약정서 원본에는 ‘한도 미사용 수수료’ 조항이 보이지 않았고, 대출 개시일·만기일·이자율 등 주요 항목도 모두 공란이었다. 은행은 결국 100만 원을 환급 처리하고 근저당을 말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소송까지 가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의뢰인은 사과 한마디 없는 은행 측의 무성의하고 오만한 대응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15 2025. 10. October Vol.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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