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0월호

겸손 속에 쌓아 올린 내공 그러나 그래서 이번 인터뷰 는 망했다. ‘법무사 30년 상’ 수상 자로서 30년간의 재미있고 다사 다난했던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 까 잔뜩 기대했건만, 김 법무사는 질문마다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많은 사건을 맡았지만 오래 돼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별로 없습니다.” 필자는 심기일전하여 아쉬웠던 사건이나 특별히 보람이 있던 사건에 대해 물었다. “딱히 보람이 있었던 건 모르겠고, 아쉬웠던 사건 들은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필자는 크게 당황했지만, 이 역시 그의 성품을 보 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무사로서 30년이 나 일해 오면서 보람 있었던 사건에 대해 하나하나 꺼내 가며 화려한 무용담을 자랑할 수도 있을 터이나, 그는 그 모든 지난한 일들이 뇌리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선을 행하되, 행했다는 생각을 두지 말라.” 고등학교 때 배웠던 부처님의 ‘무주상보시(無住相 布施)’의 가르침이 문득 생각나기도 하고. 괜히 철학과 를 선택했던 건 아니었구나 싶기도 했다. “몇 가지 생각나는 건 있습니다. 지금은 개명허가 가 쉽게 나지만 예전에는 개명허가결정을 받기가 어려 웠어요. 그때는 이름 때문에 사는 게 괴로웠던 분들이 참 많았는데, 신청서를 일고여덟 장씩 길게 써서 겨우 개명허가를 받아내 그분들에게 기쁨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많은 노력에도 허가가 나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도 있고요.” 그는 그 복잡한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건물 명도 집행을 하던 중 세입자가 집행을 방해해 경찰까지 동원 된 적도 있었다며, 그런 사건들이 보람이 있었다기보다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힘든 사건들도 있었지만 성 공적으로 마무리하면 보람이 있 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법무사로서 살아온 세월이 돌이켜보면 그리 짧지만은 않았지 만 또 금방 지나간 것 같다고 그는 회상했다. 30년 경험이 전하는 업계에 대한 단상 “1994년, 제2회 법무사시험에 합격해 95년도에 법 무사 등록을 했죠. 처음부터 개업한 것은 아니었고, 3~4 년 정도 기존 법무사 사무소에 취직해 일했습니다. 서소 문 쪽에 사무소가 있었는데, 금융기관이 많았던 지역이 라 근저당권설정 관련 등기업무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는 본직제출을 강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등 기를 하려면 직원이 아닌 법무사가 직접 등기소에 가야 했습니다. 지방 등기소에 제출해야 할 때는 단 한 건으 로 하루가 다 가버리기도 했죠.” 그는 전자신청이나 복대리 제도도 원활하지 않던 시절에 반드시 법무사가 직접 등기를 접수하러 다니던 것이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등기제도에 대한 안 전, 법무사로서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고수되어야 하는 제도인 것 같다고 했다. “당시에도 당장 사건이 많은 사무실들은 바쁘고 불편하니 본직제출제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았습니 다. 그래서 제출사무원 제도가 시행되었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죠. 그렇지만 당장의 불편함만 바라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보정업무는 등기신청의 연장이자 “법무사라는 직업을 만나 저는 생 계도 해결했고, 결혼해 가족도 꾸 릴 수 있었습니다. 법무사라는 직 업은 저에게 ‘축복’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요. 60대 초반으로 다들 은퇴할 나이지만, 저는 찾아주는 의뢰인만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 는 한 계속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입니까.” 법무사 시시각각 법무사가 사는 법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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