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견]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이 하 ‘추정 법리’라 한다)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①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자의 채무승인으로부터 시효완성에 관한 채무자의 인식 및 그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채무자의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법리이다. 이러한 인식의 추정 및 의사표시의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하여 인정되는 사실상 추 정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정은 경험칙으로 뒷받침되지 않거나 오히려 경험칙에 어긋난다.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의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 기 어렵다. 시효완성 여부는 소멸시효 기간, 소멸시효 기산점, 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 사유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 된다. 이러한 요소에 대한 판단은 때로 불명확하고 복잡하므로 단지 소멸시효 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 성 사실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추정도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효이익 포기는 시효완성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인하여 그 기산일로 소급 하여 채무에서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알면 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 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을 하는 채무자의 인식과 의사에 관한 경험칙은 나라마다 크게 달라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런 데 우리나라의 추정 법리는 비교법적으로 볼 때 이례적인 법리 로 평가된다. ② 시효이익 포기는 단순히 채무에 관한 인식을 표시하 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법적 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서 채무승인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러한 효과의사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채무 자의 자기결정에 따라 정당화하는 시효이익 포기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는 채무승인 행위에는 요구되지 않는 요소이므로, 시효완성 후 소멸시효 중단사유에 해당하는 채무승인 행위가 있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곧바로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라는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추정 법리는 이러한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의 근본적 인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채무승인 행위가 있으면 이로부터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구조 를 취하고 있다. 이는 추정이라는 간편한 법적 수단에 기대어 세밀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효과의사에 대한 탐구 과정 을 일단 생략하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이러한 생략은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해석 과정을 부실하게 만들고, 그 결과 시효이익의 포기 여부에 관한 채무자 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도 수반한다. ③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행위만을 근 거로 하여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시효이익 포 기의 의사표시를 손쉽게 추정한다. 이는 권리나 이익을 포기하 는 의사표시에 대해 엄격하고 신중한 해석을 요구하는 대법원 판례의 일반적인 원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④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나 채무자 보호에 관한 민법 제 184조 제1항, 제2항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채무 자의 법적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사정만 있으면 그 사정으로부터 시효완성 사실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 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고, 채무자에게 이러한 추정을 번 복할 부담을 부과한다. 이는 채무자를 본래 법이 예정하지 않 았던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가 추정의 번복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재판 실무와 결합할 경우 채무자의 구조적 열위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또한 추정 법리는 대부업체나 추심업체 등이 시효완성 후 채무자에게 일부 변제 등 채무승인 행위를 압박하거나 유도함 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하게 하는 데 악용되는 등 금융 소비자 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추정 법리는 정 책적으로도 부당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Sellecting : 김정준 본지 편집주간 55 2025. 10. October Vol. 700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