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0월호

서태후는 매끼 128가지의 요리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 비용은 농민 한 사람의 1년 치 식비에 해당했다고 한 다. 여행갈 때 타던 전용 열차에는 아궁이가 50개 딸린 주방 열차 두 칸이 딸려 있었고, 50여 명의 요리사가 매 끼 식사를 준비했다. 특별히 서태후가 좋아한 음식은 오리고기로 알려 졌다. 오리에 양념을 발라가며 화덕에 굽는 요리는 난징 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오리요리는 전역에 퍼 졌고, 유명한 ‘베이징 카오야’가 태어난 것은 청나라 때 의 일이다. 바삭하게 구운 오리껍질을 밀전병에 싸 먹으 며, 오리의 뼈와 내장으로 만든 다양한 풀코스 요리가 제공된다. 북경오리 요리 중에서도 서태후는 오리 혀를 즐겼 다고 한다. 서태후를 모셨던 황실 여관의 기록에 따르면 오리 혀는 따로 접시에 담았다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 았다. 1861년 서태후의 서른한 살 생일상에는 24가지 요 리 중 8가지가 오리구이와 탕, 콩팥 등 오리로 만든 요리 였다. 주 요리로는 오리고기 외에 닭고기, 돼지고기가 있 었고, 4개의 대형접시에 복·수·만·년(福壽萬年)이라는 글 자가 새겨졌다. 128가지 식단에 비하면 수가 적어 보이지 만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말린 전복 같은 고급 재료들이 투입됐다. 지금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식재료 들이 대부분이다. 상어 지느러미는 ‘샥스핀’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서양의 푸아그라와 비슷하게 동물학대 논란이 있 다. 상어의 고기는 별 상품가치가 없어 지느러미만 자르 고 놓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풀려난 상어는 지느러 미가 없어 헤엄치지 못하고 죽는다. 게다가 상어지느러미 그 자체에는 아무런 맛이 없 고 육수를 스며들게 해 식감을 즐기는 것이어서 다른 재 료로 충분히 대체가 가능하다. 제비집은 바다 절벽에 집을 짓는 칼새의 둥지인데 역시 무미, 무취이지만 과거에는 목숨을 걸고 따야 했고, 새털과 불순물을 꼼꼼히 제거해야 하므로 손이 많이 간 다. 해초가 주재료로 새가 침으로 굳혀 둥지를 만든다. 콜라겐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미용에 좋은 식재료로 통한다. • 서태후의 최애음식은 동파육, ‘항령’이라 부르며 끼니마다 탐닉 말린 전복, 해삼 같은 해산물들은 ‘건화(乾貨)’라고 한다. 불도장 같은 국물 요리에 쓰이는데 생물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깊은 맛이 난다. 또, 건조시키는 과정 자 체가 까다롭다 보니 고가에 팔린다. 불려서 요리에 사용 할 때도 물을 매일 갈아주는 등 신경을 써야 하는 식재 료다. 우리나라 궁중요리인 삼합장과도 건홍합과 건해삼 을 쓰는 게 정석이지만 오늘날에는 생물을 사용한다. 서태후의 최애 음식 중 의외의 메뉴도 있는데 바로 동파육이다. 그녀는 동파육을 ‘향령(香鈴)’이라고 부르며 거의 매끼 내오도록 했다고 한다. 서태후식 동파육은 큼 직한 돼지껍질 표면에 바둑판 모양의 잔 칼집을 낸다. 사실 동파육은 제대로 만들려면 비계가 붙은 돼지 고기를 한 번 데쳐내고, 표면을 굽고, 장시간 조려내야 하 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까다롭다. 우리나라 중식 당뿐 아니라 현지에서도 동파육을 만들 때는 과정을 어 느 정도 생략할 정도다. 그런데 중국 황실에서 100가지가 넘는 요리를 차려 먹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 지를 파악하기 어렵게 해 독살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게 다가 서태후는 수라상을 차려내면 다 먹는 게 아니라 몇 가지만을 골라 먹고 수저를 놓았다. 나머지 음식들은 환 관이나 여관들이 차지했으니 결과적으로 아랫사람들만 호강한 셈이다. 산해진미도 배가 부르면 소용이 없고, 권력이 아무 리 화려해도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결국 서태후 의 사치와 탐욕은 조국인 청나라의 몰락을 가져왔고, 그 녀는 오늘날까지 희대의 악녀로 기억되고 있다. 69 2025. 10. October Vol.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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