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법무사 10월호

를 목격하고, 동생과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 한다. 그리고 이때, 방송실에 갇힌 아이들은 좀비가 소리 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송을 켜 좀비를 유인하 려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은 뜻밖 에도 고요하고 서정적인 선율, 슈베르트의 명곡 「사랑스 러운 가장조 소나타」였다. 좀비 떼가 몰려드는 아비규환 속을 흘러가는 잔잔 하고 아름다운 클래식. 느긋한 평온함과 팽팽한 긴장이 동시에 감도는 이 아이러니한 대비로 극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 완성된다. 사랑의 기쁨을 담은 선율, 극한상황에서도 빛나는 인간성의 근원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는 오스트리아의 초기 낭만주의 작곡가다. 그는 독일 가곡 형식인 ‘리트(Lied)’ 를 정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연가곡집인 「겨울 나그네 (Winterreise)」에 수록된 ‘보리수(Der Lindenbaum)’를 비롯하여, 「송어(Die Forelle)」, 「마왕」, 「죽음과 소녀」 등 아름다운 가곡 600여 편을 남겨 지금도 ‘가곡의 왕’이라 불리고 있다. 그 외에도 교향곡 8번인 「미완성 교향곡」을 포함한 13개의 교향곡과 피아노 트리오, 현악 사중주와 같은 다 양한 실내악 등 불과 서른한 살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무려 1,0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슈베르트는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도 21곡이나 작 곡했는데, 그 가운데 드라마 속 「피아노 소나타 가장 조, 작품번호 664번(Piano Sonata in A Major, D.664, Op.120)」은 그의 13번째 소나타로, 1828년 작곡한 다른 가장조 소나타인 「피아노 소나타 20번」과 구분하기 위해 ‘작은 가장조 소나타’, 또는 ‘사랑스러운 가장조 소나타’로 불리고 있다. 슈베르트가 스물두 살이던 1819년에 이 작품을 작 곡했는데, 당시 그가 사랑했던 여행지 오스트리아의 슈 타이어 지방에서 만난 열일곱 살의 아름다운 피아니스 트이자 성악가 요제피네 폰 콜러(Josephine von Koller, 1801~1874)에게 이 곡을 헌정했다. 슈베르트의 가장 짧은 소나타로서, 시작부터 끝까지 아름다운 자연의 시골 마을에서 사랑에 빠진 슈베르트 의 소박하고도 간결한, 하지만 기쁨으로 가득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1악장은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 2 악장 ‘안단테(Andante)’, 3악장 ‘알레그로(Allegro)’로 구 성되었는데,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829년 에야 초판이 발행되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임인 ‘슈베르 티아데(Schubertiade)’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소나타는 야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예술가 그 자체였던 슈베르트의 성격을 그대로 담고 있 다. 순박한 슈베르트의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 각 악장에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슈베르트의 가곡 속 피아노 반주 처럼 잔잔하게 시작하며, 화려하지 않고 꾸밈없는 서정성 이 돋보이는 1악장이 잔혹 좀비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 는」 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명상의 시간”이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1악장이 울 려 퍼지는 장면은, 단순한 대비 이상의 의미를 던진다. 피 비린내 가득한 공간에서 흘러나온 그 고요한 선율은 긴 장된 서사를 잠시 환기시키는 장치이자, 아이러니한 웃음 을 자아내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음악은 단순한 연출 효과가 아니라 혼란 의 한가운데서도 끝내 평정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 지, 그리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삶을 붙들려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가장조 소나타」는 좀비 드라마 속 배경음악을 넘어, 생존자들에게는 두려움을 견디게 하는 작은 버팀목이자, 시청자에게는 잔혹함 속에서도 인간성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71 2025. 10. October Vol.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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