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연구 3권(2012.3)
법무사법 개정의 연혁 / 유봉성 7 과, 각 파트에 있어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적시하는 순서로 진행하고자 한다. Ⅱ. 한국 법무사제도의 기원 2) 우리나라에 근대법제가 계수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경국대전이라 는 기본법전이 있었는데, 이에 의하면 국가권력 중 행정기능과 사법기능이 분리된 것 이 아니고 통합되어 한 기관에 의하여 행사되었으며 , 재판은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인 식되어 모든 것이 행정관료에 의하여 행사되었다. 당시에 소송의 제기는 소지라는 문서의 형식으로 제출되었는데 , 오늘날의 소장과 마찬가지로 소지를 작성하는데도 일정한 문투와 형식이 있어서 작성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작성내용이 소송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일 이어서 일반인들이 재판을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처럼 소송은 아무나 그리고 흔히 해 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소지를 작성하는 일은 일반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옛날부터 이 일에 익숙한 양반이 대필 하기도 하고, 또 소송을 다루는 관청주변에는 「소지를 대서하거나 소송수행에 조언 을 해주는 직업적인 법조인」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소송대리는 법률상 허용되지 않았으나 대서와 조언정도를 하는 직업 인은 묵인되어 왔다. 3) 이 당시 이러한 관청주변의 직업이 오늘날 법무사제도의 시원 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갑오경장이라고도 함)으로 새로운 근대적 재판제도가 도 입된 이후인 1895. 3. 25. 법률 제1호로 [재판부구성법]이 제정 공포되고 이에 따라 사법기구가 행정부로부터 분리되었고, 같은 해 4. 29. 법부령 제3호로 [민형사소송규 2) 한국법무사제도의 연혁 및 한국법무사법의 개정경과에 대한 상세한 내용에 관하여는, 김정수, “한국법무사법”(법률서원, 2006. 12. ), 1-27면 참조. 3) 이와 같은 관용정책으로 말미암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는 「所 소 志 지 씁니다」라는 간판을 걸고 임 의직업으로 소장이나 법률서류를 대서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법무사백년 사 149면). 4) 이 소지대서인은 대서인제를 공인한 것은 아닐지라도 자유로운 직업으로 허용됨으로써 대서인 이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고, 이것이 곧 대서인의 발생기원이라 할 것이다(법무사백년사 149면).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