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연구 3권(2012.3)

조선시대 부동산소유권 증명제도에 관한 고찰 / 황정수 303 I. 序 說 근대적 등기제도는 부동산거래의 안전을 위한 공시제도이다. 소유권이나 저당권이 현실적 지배를 요소로 하지 않는 관념적인 권리로 변화됨으로써 , 이 관념적 권리를 거래계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징표로서 고안해 낸 것이 등기제도이다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특히, 토지의 거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 으나, 토지거래는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이 법적으로 확립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늦어도 9세기말에 매매문서가 작성되었음이 기록에 나타나며,. 1) 그 증서 자 체는 전해오지 않으나 이 때부터 고려시대까지 토지의 매매가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2) 고려시대 토지제도는 소유관계에 따라 公田과 私田으로 구분되었고, 왕실 소속의 內莊田이나 관청의 땅인 公 廨 田과 같은 국 ⋅ 공유지는 公田에 속하였고, 일반 백성이 조상대대로 이어받아 소유하고 있는 民田은 私田이었다. 그러나 民田도 국가에 대하 여 10분의 1의 조세를 납부한 점에서 이를 또한 公田이라고도 불렀으나, 이것은 모든 토지가 국유라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즉 백성의 사유지인 民田은 소유권 개념에 비추어서는 私田이지만 收租權상으로는 公田이 된 셈이었다. 3) 고려 5대 景宗 원년(976년)에 이르러 田柴科를 설정한 후, 전시과에 의하여 직역을 담당한 관리, 향리, 군인 등에게 그 직역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토지를 분급하였고, 공 전과 사전을 구분하면서도 모든 토지가 국유라는 관념을 가지고 농민의 사유지인 民 田에서도 조세를 받아 公田이라 불렀다. 4) 고려 말에 이르러 恭愍王 3년(1391년) 5월 에 田制改革案이 제정 ⋅ 시행되고, 새로운 科田法이 공포되어 田을 남에게 賣渡할 경 우에는 官에 말하여 그 紛受한 부분은 元券에 朱書間印하고, 原券은 受者에게 돌려주 1) 朴秉濠, “우리나라 부동산거래법의 略史”, 부동사거래의 제문제, 민사판례연구회 , 1979, 1면 ; 崔燉鎬, 부동산등기법 , 1999, 법전출판사, 3면. 2) 서구제도가 도입되기까지는 물건의 가동성유무에 따른 구별 용법인 부동산과 동산의 구별을 하 지 않고 물건의 효용성 여부에 따라 하나 하나의 물건을 개별적 구체적으로 파악하였으며 , 예 컨대 田土, 家舍, 奴婢, 牛,馬 등과 같이 그 물건자체에 대한 법적규제가 독립되어 있는 것이 원 칙이었다. 대체로 田土와 家舍는 奴婢와 함께 가장 중요한 물건이므로, 田宅으로서 포함되어 규 율되었던 것이다( 朴秉濠,“우리나라 부동산거래법의 略史”, 부동사거래의 제문제, 민사판례연 구회, 1979, 2면). 조선시대 노비들은 일종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 었고, 매매의 경우 그 값은 奴가 대체로 말 1필 정도였고, 婢는 이보다 헐값에 매매되었으며 , 이 값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조금씩 상승하였다(變太燮, 韓國史通論, 三英社, 1988, 287면). 3) 李成茂, “高麗.朝鮮初期의 土地所有權에 대한 諸說의 檢討”, 省谷論叢, 1978, 9면 ; 邊太燮, 전 게서, 184면. 4) 邊太燮, 전게서, 180-18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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